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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낭랑 17세’ 학생들, <운명이다>를 만나다

2010.11.03



경기 남양주시 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준겸, 빛나, 현빈, 자연, 잔디. 이들에게 지난해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국민추모 물결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500만 명이 넘게 참여한 당시 추모의 물결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그 추모 열기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 선생님이 추천한 여러 책에서 이들은 대통령님 자서전 <운명이다>를 택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소화하기에는 다소 벅찬 대목도 있지만, 끝까지 읽었다. 책이 너덜해질 정도로 정독했다.

이들은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도 뭔가 허전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글을 남겼다.

“저희는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인 <운명이다>를 선정하여 읽고 서평까지 써냈습니다. 그 관련 저자와 인터뷰 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학생들의 정성어린 글에 관심을 보였고, 격려를 보냈다. 재단은 <운명이다>를 정리집필한 유시민 위원장(참여정책연구원장)과 <운명이다>를 통해 대통령님에 대해 알게 된 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 깜짝이야! 대통령님이 계신 줄 알았네”

“정말 저자를 직접 만나나요?” 인터뷰 성사에 학생들은 믿기지 않는 듯 몇 번이나 되물었다. 주위의 관심도 컸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까지 저자 서명을 받아달라며 책을 챙겨줬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재단 사무실로 온 학생들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다. “너무 떨려요. 노무현재단 사무실에 있다는 게 신기해요.”

유 위원장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아이쿠 깜짝이야! 우리 대통령님이 계신 줄 알았네”라며 놀랐다. 노무현 대통령 실제 모습 그대로 만든 사진 형상물을 보고 깜짝 놀란 것.

첫 화두는 호칭. 처음 인터뷰를 하는 학생들은 유 위원장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어려워했다. 법의학자가 꿈이라는 자연이가 “유시민 오빠라고 해도 되냐”고 묻자 폭소가 터졌다.

학생들은 인터뷰 내내 ‘노무현 선생님’이란 표현을 썼다. ‘대통령’을 두고 왜 굳이 ‘선생님’이란 표현을 쓰냐고 묻자 “시대를 앞서 간 사람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야무지게 답했다.

다섯 명의 학생과 유시민 위원장의 대화는 1시간 동안 진행됐다. 학생들은 노무현의 가치, 정치인의 삶, 언론개혁, ‘잃어버린 10년’ 주장의 진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관계 등 다양한 질문을 했다.

특히 학생들인 만큼 ‘공부와 학력’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정치하는데 꼭 공부가 필요한가, 정치인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상고가 최종 학력인데 힘들지는 않았는가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를 질문과 답변으로 정리한 것이다.

‘노무현의 가치’를 따른다는 것...

○ 책을 보니 노무현 선생님은 정직한 분이셨다. 그런데 현실에서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본다는 말도 있다. 이런 시대에 노무현 선생님의 가치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 대통령님은 생전에 ‘반칙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사회적 불의란 한 번에 근본적으로 없애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의가 적은 사회가 ‘보다 좋은 사회’다. 노 대통령님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박해도 많이 받았다. 대통령님 혼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 그런 일들은 많았다. 40년 전에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 같은 분도 계시고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서 돌아가신 분도 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노력해 조금씩 발전시켜 온 것이다. 노 대통령도 그런 분 중 한 분이다. 그 가치를 추구할 분들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 퇴임 이후 노무현 선생님이 힘들어 하시고 후회했던 점은.

자서전에도 나와 있는데, 대통령님 스스로 이런 것을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목이 있다. 정치개혁, 지역주의를 바꾸는 거라든가 헌법을 좀 더 합리적으로 고치는 것에 대해 큰 욕심이 있으셨다. 안될 것이라면 하지 말고 다른데 더 힘을 쏟았으면 좋았을 텐데, 할 힘도 없으면서 그런 것에 집착했던 것에 대해 후회하신 부분도 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일이 될 만할 때가 있고 안 될 때도 있는데 잘 안되는 일이라도 대통령님은 옳은 일이라면 꼭 시도하셨다. 퇴임 후에 그런 면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다.

어떤 대통령은 시장에 가서 목도리도 걸어주고 하는데, 물론 목도리 걸어 준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시장에 가 상인들의 애환을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측면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님은 해결책도 없는데 시장에만 가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쇼라며 잘 안하셨다.

○ 우리나라는 정치인의 학력에 많이 연연한다. 노무현 선생님도 부산상고가 최종 학력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힘들었다고 책에 나와 있다.

노 대통령님은 사법시험에서 60명을 뽑을 때 (지금은 1000명을 뽑지만) 합격했다. 공부 잘 하기로 치면 누구보다 대단했다. 그런데 대학을 나오지 않으니깐 정치인들이나 언론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말로는 무시 안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대학도 못 나온 게’라며 경멸적인 태도가 있었다. 대통령님은 그 점 때문에 고생도 하셨지만 한편으론 지지도 많이 받았다. 이른바 ‘나도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 이 책을 읽고 막연히 정치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정치인이 되려면 꼭 공부를 많이 해야 하나.

그렇다. 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통계를 볼 줄도 알아야 하고 법조문을 읽고 해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어느 조항을 어떻게 고치면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고, 또 뭐가 좋아지는지에 대해 데이터를 통해 이해해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적인 능력이 무척 중요하다. 여러 분이 어느 분야에 가든 특히 국회의원은 돈을 걷어 어떻게 써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학, 법률, 행정 등 다방면의 독서가 필요하다. 물론 대학을 안 가도 혼자 할 수 있지만 기본적인 지식은 습득해야 정치를 잘 할 수 있다. 또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지식의 척도는 중요한 참고사항이다. 객관적인 지표가 유리하면 선거에서 유리한 게 사실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이다.

○ 자서전 소제목에 ‘조선일보와 싸우다’가 나온다. 조중동과 맞서 싸웠던 게 정치인 노무현 선생님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격과 관련된 면도 있다. 옛날말로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격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정부 정책을 비방하고 헐뜯는 상황이 매번 반복되고 있는데 더 편하게 하기 위해 비굴하게 무릎을 꿇는 것은 (예전 대통령들은 그렇게 했지만) 개인적 성격상 용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해서 선출한 대통령이 그냥 민간기업인 신문사 사주들에 의해 농락 당하면 ‘주권재민’은 어디로 가겠는가. 권력과 언론이 서로 유착해서 이익을 나누는 권언복합체가 탄생하면 서로 말을 맞춰 독자인 국민들, 유권자인 국민을 쉽게 속일 수 있다. 대통령님은 그렇게 되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DJ라고 하지 말고 ‘김대중 대통령님’이라고 하세요”

○ 지난해 전직 대통령 두 분이 돌아가셨다. 노무현 선생님과 김대중 대통령님과의 관계는 어땠는가.

김 대통령님은 수십 년간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이라 산으로 보자면 지리산 같이 큰 산 같다. 형체가 뚜렷하고 누구나 쉽게 알아보는 큰 산 또는 산맥이다. 노 대통령님은 언제나 ‘앞에 김 대통령이 계시기 때문에 정치를 계속 해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김 대통령님도 생전에 ‘우린 전생에 형제였던 것 같다’면서 상고 출신 등 비슷한 점 다섯 가지를 말씀했다. 노 대통령님도 통합민주당 대변인 시절 기자들이 DJ라고 부르면 ‘DJ라고 하지 말고 김대중 대통령님이라고 하세요. 몇 글자 많지도 않은데...”라고 지적하곤 했다. 김 대통령은 노 대통령을 ’참 씩씩한 남자다. 시원시원한 쾌남아였다’고 말씀했다. 두 분의 인연은 그렇게 깊었다. 혹 내세가 정말 있다면 두 분이 또 만날 것이다.

○ 인터넷을 보니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이 많다. 두 분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분들도 많은데, 굳이 왜 그런 표현까지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두 분을 반대했던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하는 이야기다. 두 분이 10년 동안 집권하면서 업적도 많고 잘한 점도 많지만 모든 국민이 100% 만족한 것은 아니다. 같은 정치세력이 10년을 집권하니깐 이번엔 다른 사람을 한번 시켜보면 어떨까, 경제성장도 더 하겠다고 하니깐. 그래서 국민들이 다른 사람을 시키고 있는 중이다.

두 분의 업적이 참 많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민소득이 6천달러에서 2만달러까지 높아졌다. 3배가 됐다. 주가도 200까지 떨어졌다가 2000까지 올랐다. 외환보유고도 40만 달러까지 떨어졌다가 노 대통령님 퇴임 때 2500억 달러까지 올랐다. 그렇게 외환위기도 극복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IMF(구제금융) 전에 집권했던 사람들은 뭔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게 퍼져 나가서 많은 국민들이 10년간 훨씬 잘 할 수 있었는데 이 사람들 때문에 못한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해서 (정권을) 바꿔본 것이다. 바꿔보니깐 좋아졌는가?(일동 웃음)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냐? 그 기준이 있다. 자유로운 사회, 풍요로운 사회, 정의로운 사회, 환경이 깨끗한 사회,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 두 분이 집권할 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떤가. 더 자유로워졌나? 아니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외국의 평가도 그렇다. 풍요로워졌나? 국민소득을 보면, 2007년 2만달러에서 지금 한참 떨어졌다. 나라가 더 가난해졌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나? 있는 사람한테는 어떤지 몰라도 없는 사람들은 더 팍팍해졌다.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나? 남북관계는 최악의 경색국면으로 치닫고, 계층간 갈등의 골도 더 깊어졌다. 환경이 깨끗해졌나? 사방이 강바닥 파헤치고.(일동 웃음) 예를 든 5가지 기준으로 보면 어느 측면에서도 잘된 게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난 10년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국제사회에서 훨씬 더 인정받는 나라, 자유로운 나라, 그런 자유를 토대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가수들도 나오고 영화도 나오고 한류 붐이 일고 또 정보통신 분야에서 IT강국으로 떠오른 것도 그 ‘잃어버린 10년’에 이룬 성과 아닌가.



유시민의 ‘빨간펜’ 지도

학생들은 인터뷰가 끝나자 친구, 부모님, 선생님이 챙겨준 책에 유 위원장의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는 학교의 선생님이 저자인 책을 선물로 건넸다. 유 위원장은 “정말 굉장한 선생님”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학생들도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유 위원장은 학생들이 쓴 <운명이다> 서평에 본인의 생각을 일일이 직접 적어 건네주었다.

한 학생의 서평 중 ‘이런 방법 밖에 없었는지 떠나가 버리신 것이 너무 서운하다’란 표현에 줄을 긋고 빨간 펜으로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고 썼다. 또 다른 학생의 서평에는 ”그러게 말이야, 오래 사시면서 직접 회고록을 쓰셨다면 훨씬 좋았을텐데!“라고 적었다.

학생들은 “평생 가보로 간직해야겠다”며 기뻐했다. 유 위원장은 “학생들과의 인터뷰가 참 신선하다”며, “대통령님께서 생전에 듣지 못하셨던 ‘선생님’이란 존칭을 지금 젊은이들이 불러주니깐 그저 참 고맙다”며 학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직 국민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대통령”
- 학생들의 ‘운명이다’ 서평... 평생 잊지 못할 책


학생들이 인터뷰 전에 쓴 <운명이다> 서평 일부를 소개한다.

잔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날, 학교에서도 온 종일 노무현 대통령의 관한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이○○ 오빠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면서 평소에 정말 존경했던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며 ‘슬프다’라면서 눈물을 보였다. 그 당시엔 나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픈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준겸 “일본 천왕에게도, 김정일에게도, 고이즈미 총리에게도 어느 고위급 인사일지라도 당당히 인사한 노무현 대통령은 오직 국민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그런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한테는 그저 자살한 대통령으로만 기억했지만 이젠 다릅니다. 인간 노무현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몸소 실천한 대통령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딱딱한 책인지만 알았던 <운명이다>가 이렇게 뜻 깊고 슬픈 책인지 전혀 몰랐는데 평생 잊지 못할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빛나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난 이제야 그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노무현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바보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았던 사람 같기도 하다. 그 분의 죽음이 너무 안쓰럽고 속상하다.”

현빈 “원칙과 소신을 지킨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때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보! 그 동안 사람들이 저에게 붙여준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별명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하면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보로 불리는 게 좋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똑똑한 바보 대통령으로 남았다.”

자연내가 본 사람 노무현 아저씨는 락스퍼라는 꽃과 어울리는 사람이다. 노무현 아저씨를 비유할 만한 것이 있을까 하다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락스퍼는 정의, 자유, 사랑의 싹틈을 의미한다. 진심으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하며 정의로웠던 노무현 아저씨와 락스퍼의 꽃말은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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