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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터뷰] “나는 개새끼입니다”, 정카피가 사는 법

2010.11.09





말로만 듣던 ‘정카피’(사람들은 카피라이터 정철을 줄여 이렇게 부른다)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6월 26일.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과 우루과이의 8강 진출 결정전이 있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아이 셋과 집사람까지 온가족을 대동하고 ‘노랑개비’(다음노사모카페)가 운행하는 봉하버스에 오른 날인데, 그날따라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아서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뵈러 가는 건지 아이들 소풍에 따라가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더랬다.

김제동? 박휘순? 정카피!

비오는 고속도로를 1시간쯤 달렸을까? 북새통에도 “자기소개를 빼먹으면 섭섭하다”는 진행자의 주장에 따라 맨 앞줄부터 한 명씩 자기소개를 시작하는데, 저만치 뒤쪽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남자가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라는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게 보였다.

그가 바로 정철이었는데, 그때 사회자가 “그 유명한 ‘정철카피’의 주인공이자 <내 머리 사용법>과 <불법사전>의 저자”라는 소개를 따로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고 그저 ‘김제동이나 개그맨 박휘순을 닮은 어느 중년’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한 자기소개라는 게 “안녕하세요. 정철입니다. 반갑습니다”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를 대번에 알아보지 못하고 시큰둥했던 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때 나는 그를 잘 몰랐다. 그날 봉하로 가는 버스 안의 주인공은 통로를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이었으니까.

두 번째 만남은 딱 넉 달 뒤 이뤄졌다. <노무현재단>의 홈페이지 편집위원회에서였다. 나는 그가 재단의 편집위원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던 것도 몰랐다. 겨우 1주일 출근부를 찍은 늙다리 재단 새내기인 나와, 편집위원이란 이름의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은 처음보다 두 배는 더 반갑고, 세 배는 더 어색하게 이뤄졌다. 세상 좁다더니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겨우 넉 달 사이에 사람이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그는 대충 말리고 빗질도 안했을 것 같은 덥수룩한 머리에, 기른 것인지 깎지 않아서 그냥 길어진 것인지 모를 수염, 그리고 뿔테 안경, 옷만 조금 두터워졌을 뿐 처음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우리의 세 번째 만남은 며칠 뒤 ‘인터뷰어’(인터뷰를 하는 사람)와 ‘인터뷰이’(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라는 관계로 이어졌다. 아, 갈수록 공식적이어서 더욱 어색한 만남이라니!



카피라이터답지 않은 카피라이터

지난 6월 이후 나는 그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는데, 그가 26년차 베테랑 카피라이터라는 것과, 1993년에 낸 <씹어 먹는 책, 이빨>을 시작으로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내 머리 사용법>, 올 봄에 선보인 <불법사전>까지 다섯 권의 책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점, 그리고 오래 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이자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서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오늘의 촛불’ 시리즈 등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대통령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스타라는 점 등이다.

그런데 세 번째 만난 정철은 내가 ‘생각’(이라고 읽고 ‘착각’이라고 해석한다)해왔던 카피라이터와는 많이 달랐다. 나는 평소 ‘카피라이터’ 하면 뭔가 날카롭고 지적인 이미지, 젊고 신선한 감각에 충실하게 사느라 더해진 세련미, 피로와 스트레스가 만들어놓은 신경질증 등을 떠올렸는데 그에게서는 좀처럼 그런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26년 경력이면 뭔가 그럴싸한 전문용어와 미사어구로 은근히 자기자랑을 늘어놓을 만도 한데, 그의 말투와 행동은 오히려 이제 막 카피라이터 양성학원에 들어온 늦깎이 학생처럼 수더분하다 못해 자신을 칭찬하는 이야기에서는 소년처럼 수줍어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은 내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이럴 것’이라 생각하면 ‘저런 대답’이, ‘아니요’를 기대한 질문에는 ‘맞아요!’라는 맞장구가 나왔다. 그러다 결국엔 ‘내가 보지 못한 뭔가 특이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오기까지 발동해 그때부터 나는 그의 말보다 그의 특이함을 들춰낼 질문을 고민하느라 바빴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에게서 베테랑 카피라이터‘다운’ 모습을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 겨우 하나, 지극한 평범함에서 오는 특이함을 보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랄까? 그건 아마도 그를 대표하는 말 가운데 하나인 ‘역발상’이라는 틀에 내 스스로를 가두고 그를 만나려 했던 탓일 게다.



소설가를 꿈꾸던 소년, 카피라이터가 되다

정카피는 학창시절 글을 좀 썼고, 교내 사생대회에서 상도 좀 탔고, 그러다 때가 돼서 대학을 가기는 가야겠는데 부모의 반대로 원하는 학과를 가지 못했고, 그랬으니 학과 공부를 제대로 했을 리가 없고, 학구파는 아니었지만 나름 대학생다운 진지한 고민과 방황도 했다.

그 사이 선배의 손에 이끌려 2년 남짓 ‘청리’라는 야학에서 활동했으며, 때로는 골방에 처박혀 열심히 소설도 썼다. 당시 세상을 향한 그의 시선이 애정이었는지, 열정이었는지, 분노였는지, 혹은 관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는 “대학 입학과 졸업 후 군을 제대하기까지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과 87년 6월 항쟁이라는 현대사를 겪으면서 치열하게 시대에 맞서 싸운 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는 말로 1980년대를 산 ‘청년 정철’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시 그는 오랫동안 세상 속의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았다.

학과 교수와 사회에 먼저 진출한 친구들 덕분에 거저(?)먹게 된, 대기업 입사라는 따 놓은 당상을 마다하고 ‘괜히 뭔가 끌려서’ 들어간 첫 직장이 연합광고였다. 그리고 초짜 카피라이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26년.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이미 카피라이터로서 충분히 이름을 날렸고, 자기 이름을 단 책도 여러 권을 냈다. 책이 유명해지면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여기저기 강연도 많이 다닌다.

여기까지 직업인으로서 그의 이력은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이름만 입력해도 주르륵 펼쳐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카피의 바이오그래피에는 그에게 ‘성공한 카피라이터’ 이상의 의미를 주는 값진 이름 하나가 들어있다. 바로 ‘노무현’이다.

“나는 개새끼입니다”

지난 해 5월 23일. 이른 아침부터 세상이 온통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침통해 있던 그날. 8년간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고락을 함께 했던 송파노사모 식구들과 당장 봉하로 내려갈 채비를 하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이 범벅이 된 글 “나는 개새끼입니다”를 인터넷에 올렸다.

대통령 노무현은 물론 자연인 노무현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던 세상에 대한 분노였고, 그가 무장해제 된 채 세상 끝으로 내몰릴 때까지 나 몰라라 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다. 다음은 당시 그가 올렸던 글의 전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노무현 카피라이터’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로 불린다. 정카피는 오래전부터 노무현을 사랑했다. 국회의원 노무현이 세상에 처음 각인된 5공 청문회. 젊었던 노무현을 보면서 불의에 분노하는 그 당당함에 끌렸고,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킨 정치적 스승이었던 김영삼의 3당합당 선언에 ‘반대’를 외치며 몸부림치는 모습에 정치인으로서의 소신과 진정성을 느꼈고, 2002년 광주경선의 기적을 지켜보면서 인간 노무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의 무한사랑을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재는 아직도 저에게 커다란 아픔입니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여전히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이제는 눈물타령 그만하라’며 다시 일어서기를 독려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슬퍼하는 것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몫입니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슬픔을 밀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슬픔도 힘입니다. 눈물도 힘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와 그의 뜻을 잊지 않고, 자기 삶의 현장에서 조금씩 실천해 나가는 것이죠.”

요즘 정카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노무현을 추모하고 기록하며 그의 뜻을 잇는 일에 열심이다. 지난 5월 서거 1주기의 화두였던 ‘5월은 노무현입니다’나 6.2 지방선거에서 한명숙 선거캠프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사람특별시’, 100만 민란 프로젝트의 ‘100만송이’ 등 각종 카피 작업이 그렇고, 재단에 연재되었던 ‘노무현을 오래오래 사랑하는 방법’이나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각종 포스팅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사는 세상에 ‘노무현가게’ 오픈합니다

“사람들이 제 책을 쭉 읽고 나면 한가지로 집중되는 뭔가가 있는 거 같다고 합니다. 나는 그게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글과 카피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사물, 사랑, 희망, 슬픔, 분노 등의 감정들은 모두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고 결국 다시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정카피의 작품들은 얼핏 보면 정치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엔 모두가 사람, 그리고 상식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사는 세상을 방해하는 이들을 꾸짖고, 비판하는 것 역시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이 정치적으로 읽히는 것은 어쩌면 그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역발상적인’ 방식 때문일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상식을 이야기하고, 또 상식을 세워나가는 사람. 그의 블로그를 두고 “총명탕보다 좋은 뇌진탕”이라고 평한 어느 네티즌의 소감이야 말로 정철의 카피라이터적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사는 세상’에 연재할 새 시리즈 정했습니다. 바로 <노무현가게>입니다. 물론 상상속의 구멍가게에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서도 노무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노무현 커피는 어떨까? 노무현의 담배는 어떨까? 재미있을 거 같지 않습니까? 11월 셋째 주, <노무현가게>에서 소개할 첫 번째 물건은 ‘노무현 라면’입니다.”



정카피의 ‘사람 더하기’

다시 그를 처음 만났던 지난 6월 26일의 풍경 속으로 돌아가 본다. 그날 저녁 ‘내가 쓴 노무현’이라는 주제로 카피라이터 정철이 아닌 노무현을 사랑하는 정철의 가슴 시린 노무현 강연회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삶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봉하에서 듣는 ‘정철의 노무현 이야기’는 그날 내린 장맛비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질펀하게 적셔놓았다.

강연회가 끝나고 즉석에서 ‘정철 봉하 사인회’가 있었다. 정철이든 노무현이든 여섯 살짜리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큰 딸아이 윤서가 기필코 책에 사인을 받아야겠다고 우겨대는 통에 자리에서 <불법사전> 한 권을 샀다. 딸아이와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 번 정카피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그때 나는 ‘사인은 받아서 뭐하나, 그냥 인터넷에서 사면 더 쌀 텐데’하며 아주 좀스러운 생각을 0.1초 정도 했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딸아이가 ‘자기 꺼’라며 책을 숨겨 두고 보여주질 않아 읽지 못하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자고 있는 틈에 몰래 첫 장을 열 수 있었다. 그즈음 지인으로부터 <내 머리 사용법>도 선물 받았다. 나는 정철을 약간 더 알게 되었고, 그의 순수한 당돌함을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와 친해지는 연습을 하며 네 번째 만남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 그리고 내 방 책장에 꽂혀 있는 두 책의 첫 장에는 정철의 사인과 함께 각각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정철 더하기 조윤서’
‘웃으세요!’




카피라이터 정철이 좋아 하는 것들

새벽 여섯시에서 아홉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연필 들 수 있는 세 시간을 좋아하고
드르륵드르륵 연필 깎는 것을 좋아하고
예쁜 연필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쏟아지는 그 많은 말들을 좋아하고
술값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술자리
즉 집에서 아내와 마시는 술자리를 특히 좋아하고
딸아이가 술 한 잔 따라주는 것을 좋아하고
취한사람 용서하기를 좋아하고
취하지 않는 사람 용서하기를 좋아하고
담배는 끊지 못해 할 수 없이 좋아하고
봄날은 간다고 주장하는 한영애의 퇴폐적 창법을 좋아하고
노무현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좋아하고
박주영의 손목 아래 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유니폼을 좋아하고
이세돌의 바둑판 노려보는 깊은 눈을 좋아하고
지금 이 시간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있다고 상상하는 걸 좋아하고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

<불법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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