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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과의 열린인터뷰] “백만민란의 꿈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시작됐다”

2010.11.11





몸은 지쳤다. 그러나 정신의 날은 점점 더 치열하게 벼려진다.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유쾌한 100만 민란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연출가이며 주연배우이기도 한, ‘민란’이라는 비유를 차용해 말하자면 그 ‘수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성근의 지금 상태가 그렇다.

민란의 대장정에 나선 후 75일 동안, 48일간을 거리에 섰고 간담회를 20번 치렀다고 한다. 크고 작은 인터뷰는 치지도 않은 것이 그렇다니 가히 살인적인 강행군 아닌가. 우선 몸이 견딜 수 없을 터인데도 그는 오히려 정신력이 버텨낼 수 있을 것인지를 걱정했다. 두 번씩이나 사고력이 마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일종의 ‘블랙아웃’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노무현재단> 회의실에서 ‘사람사는 세상’ 회원들과 열린인터뷰를 가진 10일, 문성근은 조금도 지친 내색을 하지 않고 1시간 50여 분간 쉴 새 없이 자신의 의지와 희망과 기대를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살인적인 강행군, 지금까지는 성공이다

청년에서부터 스스로를 ‘할미꽃’이라 자칭한 어르신까지, 이날 문성근을 만난 열성회원들이 묻고 듣기 원했던 것들에는, 모르는 것에 대한 궁금증뿐 아니라, 그가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과 격려와 희망과 결의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100만을 목표로 하는 ‘민란’에 지금까지 3만 명 밖에 가담시키지 못한데 대한 질문에는 힐난이나 실망보다는 답답함과 초조함이 더 짙게 배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정작 주모자 문성근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년 가을까지 야권 통합을 결판내고 2012년 총선에서 민란을 승리로 이끈다는 시간표에 따르면 본격적인 전투는 내년 초부터나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바람이 불 때까지 군불을 때는 시기로 볼 수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봉기’의 페이스가 더딘 것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가능합니다. 지금은 ‘알리는 단계’여서 저 자신도 전국 투어에 나서는 등 모든 것이 힘들지만, 이제 ‘알려진 단계’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자체 행사가 벌어지면서 ‘자체 들불의 단계’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이 동네 접주야’ 하고 소리치는 수많은 동지들이 나타날 겁니다.”



느린 것이 아니다, 아직 전투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면 왜 100만인가, 진보통합운동 등 다른 야권통합운동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이밖에도 운동의 명확한 의미와 목표, 달성방법에 대한 질문과 답변은 당연히 이날 인터뷰의 핵심이었는데, 이에 대한 문성근의 답변은 시종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선 스케일이 컸다. 그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어찌됐든 야권이 힘을 합쳐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총선·대선에서 승리를 하든 말든 하지 않겠나 하는 임시방편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며 영속적인 전국정당을 만들어 그 정당을 통해 정권을 되찾아 와야 하며, 그 정당과 정권을 지속적으로 감시․보호․유지할 뿐 아니라 정책제안까지 하는 거대한 정치세력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백만송이 꽃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분열이 시민사회에도 투영되어 있어요. 현장에 나가 보면 많은 분들이 나오시는데 자리마저 따로 앉을 정도에요. 합쳐야 합니다. 또 민주당이 당원 2백만이라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25만 명에 불과해요. 다른 야당들의 당원을 모두 합치면 15만 명 정도? 민주당까지 모두 40만 명이지요. 이에 비해 백만의 의미는 한마디로 ‘많다’는 겁니다. 상징적인 의미로써나 실질적인 숫자로써나 이 ‘많은 100만명’이 야권분열과 갈등의 앙금들을 모두 품어 버리는 바다의 역할을 하자는 것이지요.”

민주당은 지역적으로는 한나라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당원들이 대의원조차 뽑지 못하는 비민주적인 정당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 그는,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전국정당을 만들어낼 유일한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민주당을 봐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 아니면 민주당을 개혁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민주당 내에서도 호응 세력이 많다고 전했다.



100만은 분열과 갈등을 품어 녹이는 바다

이런 성격의 운동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늦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수구세력들은 정권을 빼앗긴 후 은밀한 조직화에 들어가 보수신문이 앞장서고 보수우익단체가 따라 붙으면서 보수세력을 공고화했고 미국에서도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무브온 운동,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압승을 불러온 티파티 운동의 예를 들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우리도 노사모의 추억이 있긴 하지요.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노사모가 이젠 대통령을 감시하겠다고 선언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황당해 하던 기억이 납니다. 대통령이 처한 상황도 모르고…”

그런 한계를 넘어 정당까지 포괄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으로 진보정권을 창출하는 거대한 진보세력의 조직화를 그는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비롯된 것 또한 분명했다.

“노 대통령의 유서에 ‘집 가까운데 비석 하나 세워라. 오랜 생각이다’는 대목을 보며 처음엔 이 분이 얼마나 이 나라가 싫었으면 국립묘지까지 거부하나고 생각했죠. 그런데 나중에 2008년 가을에 그 분을 마지막으로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리니 ‘아하! 이 분이 죽어 누어서라도 지역통합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오랜 생각이다란 말 속에 담으셨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이 왔죠.”

당시 노 대통령은 “내가 봉하에 내려 온 것은 열린우리당이 전국정당이 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인데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니 참 허망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2009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을 때 “나는 이제 힘이 미약하니 너는 끝까지 남아서 싸우라”는 당부의 말씀을 들었던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렇다면 문성근이 지금 스스로에게 늘 다짐하는 것은 “끝까지 남아 지역통합을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 틀림없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 때문에

그런데 왜 꼭 문성근이어야 할까.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한국 영화에 안성기와 문성근 밖에 없느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스타파워를 가졌다” 고 평한 배우가, 그렇다고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야심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음’을 훌륭하게 증명해 온 그가 왜 노무현과 김대중 대통령의 유지를 특별히 무겁게 받아들여 혼신의 힘을 다해 ‘정치적 민란’의 선봉에 서게 하는가. 이는 그의 부친 문익환 목사를 떠올리지 않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현장에서 때로는 시민들의 냉정하거나 적대적인 태도에 상처를 받기도 했죠. 한번은 행인으로부터 ‘니 애비부터 싫었어, 이 빨갱이 새끼야!’라는 욕설까지 들었지요.”

그렇다. 문성근은 시대의 통일운동가요, 사상가였던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것이다.

“문 목사는 아버지로서 내게 중요한 분이죠. 역사적,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측면과 함께 아버지로서 바라봐야 하는 아픈 측면이 있죠. 생애 마지막 17년 반 중 12년 3개월을 감옥에 계셨죠.”

그는 아버지의 재판 중 판사가 아버지 발언을 제지하는데 열받아 소리를 질렀다가 감치명령을 받고 아버지와 같은 안양교도소에 갇혔던 일,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3m 벽을 타넘어 아버지가 갇혀 있는 감방으로 잠입했던 일, 감방 안에 반듯하게 누워 미동도 않고 호흡을 하던 아버지를 보며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소리죽여 울었던,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옛일을 소개했다.

“그런 아버지 인생에 시비 걸 일이란 없죠. 딱 하나 있다면 87년 민주화세력 분열 때의 일이죠. 그걸 아들인 내가 국민께 대신 사죄하는 셈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문성근이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한다. ‘닮았다’가 아니라 ‘닮아간다’는 말에서, ‘큰바위 얼굴’의 에피소드처럼 문 목사의 정신이 지금 아들에게 현신하고 있는 것이라는 암시를 느낀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니 애비부터 싫었어, 이 빨갱이 새끼야!”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는 “따라다니기는 많이 했지만 내가 앞장서 다니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스스로 부족한 걸 알고 있으나 지치지 않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많이 도와 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렇다. 그가 꿈꾸는 민란은 스케일이 크다. 그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로 될 일이 아니다. ‘돕는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민란 프로젝트’ 회원 가입서에 서명하고 간 고교생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되돌아와 주민등록번호 쓴 것을 걱정하는 이 시대착오적인 공포의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야 되겠는가. 갈라진 채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래, 이번 주말에는 우선 우금치부터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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