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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세상칼럼

냄새나는 절망을 씻고 다시 쓴다 ‘희망’

2010.11.19





“그래서 나는 이창동이 좋다. 그의 이야기는 머리 깨지는 앨빈 토플러의 경제학 이론이나 대학 초년에 의무감으로 읽었던 미학책보다 일상 아주 가까이에 있고 재미있으며 솔직하다. 그는 진실과 거짓 앞에서 대담하고, 희망과 절망을 이야기할 때 흔들리지 않는 중심도 가졌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종종 ‘너 자신에게만은 거짓말 하지 말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듣는다. 참 놀라운 것은, 그는 참 답답한 이야기를 정말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는 점이다. 다만 나는 그가 조금만 더 유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2007년 5월 23일. 친구와 함께 <밀양> 개봉일에 극장을 다녀와서)

이창동, 조선일보를 거부하다

며칠 전 점심을 먹다가 동료에게 속 시원한 소식 하나를 들었다. 이창동 감독이 제31회 청룡영화상에 그의 신작 <시>를 출품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2002년 <오아시스>, 2007년 <밀양>에 이어 세 번째다.

특정 영화상 출품거부가 뭐 대단한 뉴스거리나 되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출품’이 곧 ‘수상’이라는 말에 동의할 사람이 별로 없듯이, 출품을 거부한 것이 반드시 수상을 거부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청룡영화상 사무국에서 상을 주겠다고 발표를 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속이 시원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창동 감독이 출품을 거부한 청룡영화제는 조선일보가 후원하고 스포츠조선이 주최하는 행사다. 그는 신인 시절 이 영화상에서 <초록물고기>로 감독상, <박하사탕>으로 각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참여정부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고, 노무현 대통령 가까이에서 언론권력의 폐해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경험한 그로서는, 그동안 예전 수상경력이 껄끄러웠을지도 모른다. 이창동 감독이 청룡영화상에 <시>를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이제는 조선일보가 차린 잔칫상에 방석 깔고 앉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그의 자존심이자 저항의 선포다.

<시>는 10월 23일 열린 대종상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최우수각본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휩쓸었고, 11월 8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부일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그리고 18일인 어제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타는 등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작품임을 거듭 인정받았다.



기가 막힌 ‘0점의 추억’

이창동 감독의 출품거부가 속 시원한 이유는 또 있다. <시>가 칸영화제 최우수각본상을 타면서 인터넷과 각종 언론에서 불거진 ‘0점 논란’의 기억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2009년 여름부터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시>는 여기서 두 차례 고배를 마셨다. 이창동 감독이 영화의 신도 아니고, 그의 작품이 특정 공모의 심사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탈락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에서 영진위는 이창동 감독에게 미운 티를 내도 너무 냈다. 심사위원 가운데 한사람이 최하 1~2점을 주게 돼 있는 심사기준을 어기면서까지 두 가지 항목에 0점을 줘 탈락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영진위는 “<시>가 시나리오의 기본 형식을 따르지 않은 수준미달의 작품”이라 답했다. 여기서 ‘기본 형식’이란 시나리오의 각 장면에 붙는 ‘장면번호’를 일컫는다. 시나리오를 제출했을 당시만 해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던 영진위다. 이 내용을 방송했던 MBC <시사매거진2580> 제작진은 “시나리오와 실제 촬영된 영상을 비교하면 <시>가 시나리오에 얼마나 충실하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심사위원은 ‘감독의 연출역량, 제작자의 역량과 배급-해외진출 가능성’ 항목에도 0점을 주었다. 이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작품성과 예술성을 공인받은 감독에게 연출역량과 해외진출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의미나 다름없는 0점을 준 것에는 기가 막혀 웃음도 나오질 않는다.

<시>는 장면번호를 추가해 다시 응모했지만 영진위는 차일피일 심사를 미루다 4개월이 지난 뒤에야 ‘이미 제작에 들어간 영화’라는 걸 이유삼아 <시>를 탈락시켰다. 여기저기서 논란이 일자 0점을 주었던 심사위원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꽁지를 뺐다.



미워서 다시 한 번?!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도 한술 거들었다. 지난 5월 23일 <시>가 칸영화제 최우수각본상을 타자 다음날 곧장 문화부 기자실을 찾아간 그는 “각본상은 작품상이나 인기상보다 수준이 밀리는 상이고, 이창동 감독이 200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적이 있어서 예의상 준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옹색한 발언을 했다. 0점 심사를 합리화하려다 세계 영화계가 인정하고 갈망하는 칸영화제 수상의 공신력마저 부정하고 만 것이다.

영진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으로 뉴라이트 계열 '문화미래포럼' 출신 조희문 상명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던 곳이다. 조 교수는 칸영화제가 열리던 지난 5월,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 심사위원 일부에게 국제전화로 특정 작품을 거론하며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아오다 11월 9일 해임되었다.

그는 한국 영화계가 좌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영화계에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인물인데, 정작 본인은 우편향적인 인사와 각종 외압 등으로 결국엔 토사구팽 당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를 통해 “해임은 이명박 정부의 면피적 대응이고, 필요하다면 소송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들지 모르겠다. 과연 문화체육관광부나 영진위가 이창동 감독이 참여정부 인사라는 사실만으로 <시>에 이토록 집착을 보였던 것일까? 이 궁금증은 영화를 보고나면 좀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시>에서 만나는 노무현의 기억

이창동 감독은 지난 10월에 나온 <시> DVD의 스페셜피처 인터뷰에서 “영화 <시>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경제적으로 유효하지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질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시란 무엇일까, 영화란 무엇일까’라는 원론적인 질문이면서, 부조리와 절망의 시대를 딛고 서서 희망을 찾으려는 감독의 의지이기도 하다. 이창동 감독이 <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희망’이란 무엇이었을까? <시>를 본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절망과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노무현이라는 슬픔, 그리고 또 노무현이라는 희망을 읽었다.

15년 동안 스크린 밖에 있었던 배우 윤정희를 컴백시킨 주인공 ‘미자’ 캐릭터는 그 자체가 노무현 대통령의 데칼코마니라는 느낌을 준다. 60대 중반을 사는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게 소녀와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고, 어린애 같지만 그 내면은 훨씬 복잡하고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가 있는 인물이다.

미자는 딸 대신 말썽쟁이 손자를 홀로 키우면서도 가난을 부끄러워하거나 신세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걸 즐기는 진정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미자는 여러 가지 갈등과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는데 그녀는 대부분 좀처럼 남들이 하지 않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

다시 읽는 ‘아네스의 노래’

영화 <시>는 미자가 시(詩)를 통해 재발견하는 ‘삶의 향기와 희망’, 그리고 둘도 없는 손자가 한 소녀의 죽음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진실을 접하는 순간 맞닥뜨리는 ‘냄새나는 세상에 대한 절망’ 사이에서 숨 막히는 외줄타기를 이어간다.

특히 미자와 죽은 소녀의 목소리가 교차되면서 ‘아네스의 노래’가 낭송되는 마지막 장면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하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주는데, 나는 여기서 ‘이창동 감독이 아주 작정을 하고 노무현을 이야기 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미자의 목소리로 전해지던 ‘아네스의 노래’가 어느새 죽었던 소녀의 음성으로 바뀐다. 마침내 미자와 소녀가 완전히 일치되는 순간, 카메라는 죽음 직전 소녀의 얼굴을 비춘다. 다리 위에 선 소녀는 자신을 이곳까지 내몬 세상을 향해 마지막 시선을 보낸다. 잠시 뒤 물끄러미 물밑을 바라보던 소녀가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돌린다. 엷게 웃는다. 강물이 흐른다. 화면이 암전된 뒤에도 강물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냄새나는 절망을 씻고 다시 쓴다 ‘희망’

며칠 전 가슴이 찢어지는 소식 하나를 들었다. 화창한 가을의 절정을 보여주었던 지난 11월 14일 일요일이었다. 나는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움켜쥐고 봉하에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 서러운 풍경 속에 있던 선배는 태연한 척 지난 몇 시간 동안의 일을 짧게 설명하고는 “당장 달려오지도 못하고 멀리서 속태울 네가 더 걱정”이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선배는 감췄지만 나는 얇게 떨리던 그 목소리 너머 그의 얼굴을 보았다. 대통령님 묘역에 흩뿌려진 모욕의 흔적을 닦고 또 닦아내며 그가 흘린 피눈물 자국을.

처음 <시>에 대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영화 속에서 미자와 소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영화 밖에서 이창동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 냄새나는 절망이 아니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강렬한 의지의 희망이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에 의해 그 희망이 냄새나는 절망으로 뒤덮였다. 그가 단순히 전직 대통령이 미워서 그런 짓을 했는지, 고약한 무리들과 함께 여전히 노무현을 지지하고 그리는 사람들이 울부짖고 가슴을 치는 것을 상상하며 못된 웃음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다. 의도되었든 그렇지 않든 많은 지지자들이 대통령 서거 이후 최악의 절망과 분노로 통곡했다. 사람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부엉이바위에 오르기 전, 이른 새벽 책상 앞에 앉아 생의 마지막을 적던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들에게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애써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위로로 받아들였었다. 깨어있는 시민으로, 강물처럼 멈추지 말고 흐르라는….

그런데 지금 나는 노무현이라는 희망과 냄새나는 절망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대통령님이 옆에 계셨다면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갑자기 궁금하고, 그래서 더 많이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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