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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세상칼럼

[유시민의 공판참관기] "지난번엔 소매치기로, 이번엔 마약밀수범으로 모는가"

2010.12.07



오늘 한명숙 전 총리의 이른바 '별건기소' 사건 첫 공판에 다녀왔습니다. 오후 두 시부터 약 세 시간 걸렸습니다. 지난 번 무죄난 사건은 '뇌물죄'였는데, 이번에는 '정치자금법 위반죄'입니다.

늘 그랬듯 이해찬 총리께서 공판 시작 전에 법정에 나오셨습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께서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 이기명 선생과 조기숙 교수, 민주당의 많은 국회의원들과 옛 국무총리실 비서관들이 방청석에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았습니다.

3시간의 공판... 한명숙 전 총리 "진실은 힘이 세다"

걱정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간단한 방청후기를 올립니다. 법정은 아주 작아서 방청석이 마흔 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십 수 명의 검찰 직원들이 미리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이셨던 강기석 선생과 김상희 의원이 좋게 말해서 나가게 하신 덕분에,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재판 진행상황을 기록했습니다. 판사 셋, 검사 셋, 피고인 둘(한 전 총리와 김OO 비서관) 그리고 변호인 여섯(강금실, 백승헌, 조광희 등 지난 번 재판 무죄를 끌어냈던 분들), 그렇게 마주 앉은 법정에는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먼저 검찰 모두진술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건설회사 H사 한모사장과 한 전 총리가 식사도 같이 하는 등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강조한 다음 세 가지 '범죄사실'을 제시했습니다. 2007년 4월 초순, 5월 초순, 9월 초순 세 차례에 걸쳐 각각 3억 원씩을 여행가방에 담아 모두 9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달러와 현금, 수표로 주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고양시 풍동 길가에서 한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차에 실어주었다고 합니다. 한 전 총리가 수행비서도 없이 혼자 차를 몰고 가서 길바닥에서 5만 달러와 1억5천만 원, 1억 원짜리 수표가 든 가방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때는 국무총리를 그만 둔 직후입니다. 나머지 두 번은 한 사장 혼자 일산의 한 전 총리 자택을 방문해서 전달했다고 합니다. 검찰은 목격자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모두진술에서 차분한 어조로 이 모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또다시 법정에 선 현실을 정말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평생 동안 무엇이 되려거나 더 많이 가지려고 한 적이 없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는 것 역시 생각하지도 못했고 받는 방법도 모른다. 지난번에는 돈봉투를 받아 서랍에 감추는 소매치기로 만들더니 이번에는 마약밀수범처럼 몰아가느냐.

국무총리를 지낸 국회의원이 회기 중에 지역구로 차를 손수 몰고 가 도로에서 차를 세우고 돈가방을 넘겨받는 것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서민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민주개혁세력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려고 혐의를 조작하는 막강한 검찰조직에 맞서 진실을 증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는가.

너무나 힘이 들어서 목숨을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 사건은 민주정부 10년과 두 대통령,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겨냥한 정치탄압이다. 나는 진실은 힘이 세다는 것을 믿는다. 살아온 모든 날들을 걸고 진실을 밝히겠다. 이 법정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이런 요지로 침착하게 진술했습니다.

모두진술이 끝난 후 H사 경리부장이었던 J씨에 대한 검사의 증인신문이 있었습니다. J씨는 한 사장과 더불어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인입니다. 증인신문의 초점은 9억 원의 조성경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두 가지 중요한 증거자료를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채권회수 목록'이고 다른 하나는 'B장부' 사본입니다. 둘 다 원본은 없고 사본만 검찰이 입수했습니다. 작성자는 J씨입니다. '채권회수 목록'은 H사가 부도난 후 떼인 돈을 받으려는 채권자들이 요구해서 J씨가 작성한 문서입니다. H사가 받을 권리가 있는 돈의 액수와 채무자 명단인 것이지요. 여기에 채무자 '의원', 채권액수 5억 원이라는 기록이 한 줄 나옵니다. 이 '의원'이 바로 한 전 총리라는 것이 검찰의 주장입니다.

'B장부'는 H사 한 사장의 비자금 출납기록입니다. 여기에는 한 전 총리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2007년 3월 30일, 4월 30일 그리고 8월 30일 회사의 여러 실명계좌와 차명계좌에서 급하게 3억 원을 인출해 일부를 달러로 환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J씨는 이 돈을 넣을 여행가방을 그때마다 법인카드로 구입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한 사장과 함께 돈을 가방에 넣었다고 증언했습니다.

2007년 4월 초, 5월 초, 9월초에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한 사장의 진술은 바로 'B장부'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이 되실 겁니다. 그러나 이것을 한 전 총리의 '범죄혐의'에 대한 증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J씨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을 둘러싸고 변호인과 검찰은 여러 차례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H사와 관계회사의 금융계좌 운용에 대한 자료를 검찰이 제대로 주지 않아서 증인진술의 신빙성을 시험해볼 근거가 부족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 줄 것은 다 주었다고 맞섰습니다.

결국 추가 자료를 받아 충분히 검토한 다음 반대신문을 하겠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재판장이 수용해서 J씨에 대한 반대신문을 나중에 더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변호인들의 오늘 증인반대신문은 매우 간략하게, 증인의 회사 내 지위와 역할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다음 공판은 12월 20일, H사 한 사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게 됩니다. 검찰은 20명이 넘는 증인신청을 했지만 핵심증인 두 사람의 증언 내용에 따라서 취소되는 경우가 생길 것으로 봅니다.


돈가방 전달 일시조차 특정하지 못하는 검찰

오늘 검찰의 J씨에 대한 신문을 보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첫째, 왜 한 사장은 하필이면 월 결산일이라 기업과 금융기관 모두 제일 바쁜 30일에 매번 그토록 급하게 '불법 정치후원금'을 장만했을까? 현금 인출시각이 오후 다섯 시가 지난 시점인 것으로 보아 한 사장은 매우 다급하게 자금 조성을 지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전 총리가 총리 사임 직후 시점에서 대선후보 경선 출마여부를 결심했는지도 불분명한데, 거기에 쓸 돈을 그렇게 급하게 장만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원래 정치후원금은 그렇게 급하게 조달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느긋하게 장만해 두고,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서 전달한다고들 하는데, 한 사장은 왜 그리 서둘렀을까요? J씨가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여행가방을 구입했다면 다음날 곧바로 자금을 전달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혹시 한 사장이 그 돈을 한 전 총리 후원이 아닌 다른 곳에 쓴 건 아닐까요? 이것이 첫 번째 의문입니다.

둘째, 검찰은 왜 세 차례 모두 돈가방을 전달한 날짜와 시간을 '특정'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H사가 그렇게 큰 회사가 아닌데, 3억 원을 가방에 넣어 직접 전달하고서 일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검찰이 일시를 특정해 주면 한 전 총리도 알리바이(부재증명)를 제시할 수 있을 터인데, 검찰이 일시를 특정하지 않으니 한 전 총리로서도 무죄를 입증해 보이기가 어려워집니다.

죄형법정주의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나라에서 검찰이 범죄일시도 특정하지 않은 채 전직 국무총리를 기소하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모두 돈가방을 전달한 일시조차 특정하지 못한다면, 재판부는 마땅히 공소를 기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오늘 증인신문을 보면서 '범죄 일시'를 각각 2007년 4월초, 5월초, 9월초로 적은 검찰의 공소장이 마치 모래로 만든 성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셋째,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달러를 환전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대선 경선자금이라면 당연히 원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J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 사장이 매우 급하게 지시를 했기 때문에 오후 5시가 넘어서 환전을 하기도 했고, 직원들 이름으로 쪼개서 환전을 하는가 하면, 인천공항에 가서 환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심지어 암달러상 환전시세까지 알아보았는데 가격차이가 심해서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꼭 달러로 정치후원금을 마련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처음 3억 중에는 5만 달러, 그 다음에는 17만 달러, 마지막에는 10만 5천 달러였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제대로 기소하려면 자금의 조성경위, 전달 일시와 방법, 그리고 그렇게 받은 정치자금의 사용내역을 모두 어느 정도는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검찰이 내놓은 것을 보면 자금 조성경위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전 총리는 검찰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20일 H사 한 사장이 나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돈가방을 주었다는 진술과 받지 않았다는 진술이 부딪치는 가운데 목격자는 없는 사건의 구조는 지난번 곽영욱씨 사건 무죄판결을 받을 때와 똑같습니다.

저는 한 전 총리의 말씀을 믿습니다. 검찰은 수없이 거짓말을 한 사실이 입증된 조직이지만, 한 전 총리가 거짓말하시는 것을 저는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도 믿습니다. 진실은 힘이 세다는 것을.

다음 공판도 혹시 일정이 되면 참관기를 올리면 좋겠는데, 저도 이미 정한 일정이 많아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한명숙의 진실에 따뜻한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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