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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무현시대‘성공과 좌절’ 기록이 후대를 바꾼다

2011.01.24





‘영원한 언론인’. 정연주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언론계 후배들은 그렇게 부른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한겨레신문 워싱턴특파원·논설주간, KBS 사장, 강제 해임. 그 길은 파란만장했다. 권력에 맞서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는 지사(志士)적 언론인의 전형이다.

그는 KBS 사장으로서 언론자유를 위해 이명박 정부와 맞섰다. 그때 고 리영희 선생은 직접 서한을 보내 이순신 장군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며 “반민주주의 집단의 폭력과 모략으로 꺾이는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명예롭게 소임을 다하시오”라고 격려했다.

‘죄스러움’이 등을 떠밀다

그는 2009년 9월부터 오마이뉴스에 <정연주의 증언>을 연재하고 있는 ‘노기자’이기도 하다. 권력에 빌붙는 언론인들과는 결이 다르다. 올곧다. 그 정론직필의 강직함은 역사관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행동과 참여, 그것이 역사를 바꾸는 힘의 원천이다. 역사란 펄펄 살아서 지금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지금 시점에서 재해석하고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역사다."

그는 사료가 왜 중요한지, 그 관점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재단의 사료편찬특위 책임자로서 그보다 적임자는 없을 듯하다. 그런 그가 죄스러운 마음에 사료편찬특위 위원장을 맡았다고 토로했다.

“대통령님이 떠나시고 나서 참으로 미안하고, 죄책감과 후회가 너무 많이 남았다. 그래서 그후 노무현재단이 출범하고 뜻을 기리는 사업을 하겠다며, 함께 해달라고 했을 때 죄스러움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에서 참여했다. 사료편찬특위도 재단에서 맡아달라고 해서 마다하지 않았다. 그 바닥에는 그런 죄스러움이 있다.”

정연주의 ‘회한’, 대통령의 ‘유언’

정연주 위원장의 ‘회한’은 대통령님과의 인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2008년 8월 KBS에서 쫓겨났다. 공영방송의 수장에서 자유로운 신분이 된 그는 그해 10월 봉하로 내려가서 대통령님을 뵈었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대통령님 재임 중 ‘KBS 사장과 검찰총장한테는 전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신 게 고마웠다. 참여정부는 언론의 역할에 깊이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KBS는 참여정부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내보냈다. 심지어 FTA 때는 한덕수 총리한테 KBS 때문에 FTA가 안 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아무리 강직하고 독립성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전화해서 ‘KBS 요새 왜 그래요, 살살 좀 합시다’, 그러면 대통령의 직책이 갖는 무게라는 게 있어서 아무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전화를 받았으면 내가 언론인으로서 못 견뎠을 것이다. 그렇게 언론의 역할과 영역을 인정해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고 인사드렸다.”

그는 봉하 사저의 서재에서 대통령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고 한다. 그는 그때 이야기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님의 유언처럼 남았기 때문이다. 그가 기억하는 당시 대통령님의 말씀이다.

“정치가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문화운동이나 시민운동이 조금 더디기는 하지만, 결국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아니냐. 물론 정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것은 문화운동이고, 시민운동인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 제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어 없이 권력을 가장 많이 행사하는 집단이 언론이다. 언론의 풍토를 바꾸고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절실한 문제다. 언론개혁을 위한 문화운동,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나는 코드인사다?

그가 최근 많은 강연이나 글을 통해 언론개혁을 강조하는 내면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후 대통령님이 서거하실 때까지 그는 봉하를 찾지 못했다. 지금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듬해 봄에 참 힘드셨을 텐데. 그 어려울 때 위로의 말씀조차 못 드린 게 한으로 남는다. 그때 정치검찰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매일 브리핑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언론은 이를 중계보도하고 거기에 더해 온갖 과장과 뻥튀기까지 했다. 대통령에게 온갖 모욕을 가했다. 그런 식으로 혹독하게 인간에 대한 인격살해를 했다. 본인은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 그때 다시 내려가서 뵙지 못한 게 참 부끄럽고 죄송하다.”

그는 이 대목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참 죄송하다”고 혼자말처럼 되뇌인다. 그의 죄스러움은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 권력집단의 비열함에 대한 분노로 살아난다.

“그러니까 참 묘하다. 대통령께서 2003년 5월에 직접 전화를 안 하겠다고 말씀하신 대상이 검찰과 언론이다. 그 두 집단에 가장 많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줬는데, 당신은 바로 두 집단에 의해 살해당하신 것이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져서 화제를 바꿨다. 정연주 위원장은 대통령님과 같은 개띠다. 언론개혁에 대한 열정도 비슷하다. 평소 대통령님이 어떻게 다가왔을지 궁금했다. 그는 “동갑내기인데다 생각이 비슷한 점이 참 많아서 친구 같은 느낌을 많이 가졌다”고 털어놓는다. 이어 그는 한결 상기된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코드인사라는 것을 받아들인다.”(웃음)

“왜 미국에 절절매야 합니까”

정 위원장이 대통령님과 가치지향적인 동질성을 느끼기 시작한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첫 만남은 온라인에서 언론인과 독자의 관계로 이뤄졌다. 1990년대 후반 어느 날, 정연주 한겨레신문 워싱턴특파원에게 노무현 의원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정 특파원이 쓴 칼럼을 감명 깊게 읽었다며, 자신의 홈피에 올리고 싶다고. 그게 인터넷을 통한 첫 만남이었다. 그가 서울로 돌아와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을 하고 있던 2000년에는 노무현 해수부 장관이 쓴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우편으로 받았다.

“대통령님을 직접 뵌 것은 2001년 12월이다.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이셨던 송건호 선생님 영결식장에서 처음 뵈었다. 정치인은 거의 안 왔는데, 존경하는 언론인 선배님 장례를 모시는 후배 입장에서 참 고마웠다.”

다음 만남은 2003년 1월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이뤄졌다. 파격적으로 당일 연락을 하고 바로 한겨레신문을 방문한 것이다. 그때 정연주 논설주간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에게는 당시 대화 중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게 하나 있다.

“대통령님이 나한테 ‘정 주간께서 미국에 오래 사셔서 미국을 잘 아실 텐데, 우리가 왜 미국에 늘 절절매야 합니까’라고 물으시더군. 자주적이고 싶은데 왜 절절매야 하느냐, 그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더라고.”



왜곡되지 않은 ‘노무현시대’

사료편찬사업은 이처럼 만남은 적었지만, 시대의 가치를 공유하는 긴 인연으로 대통령님과 엮인 정 위원장이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다. 사료편찬은 대통령님과 관련된 사적·공적 자료, 문서, 글, 사진, 음성, 동영상 등 일체의 기록을 다 모아서 제대로 분류하고 관리하는 작업이다. 또 대통령님과 관련한 증언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을 인터뷰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모은 자료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에서 통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게 왜 필요하냐? 우리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다.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전통이 거의 없다. 군부독재 시절은 스스로 부끄러워서 다 없애버렸다. 그나마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여러 기록을 잘 관리해왔고,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을 모두 역사에 남겨야 한다는 신념과 철학이 워낙 투철했다. 그런 것들을 다 모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는 “후대를 위해서 노무현 시대, 노무현 정부, 노무현 개인, 그가 하고자 했던 뜻과 꿈, 성공과 좌절, 이런 것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자료를 모아놓는 것이 필요하다”며 두 측면에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적대적인 언론환경 때문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된 측면이다. ‘봉하 아방궁’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책도 무조건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이유에서 반대하거나 폄하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반면, 나름대로 한계도 있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자이툰부대 파병이나 FTA 추진과정에서 참여정부가 반성해야 할 부분은 없었는지, 혹시 경제관료나 보수적인 외교안보라인에 의해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정책결정 과정이 왜곡된 것은 없는지, 혹은 대통령께서 원래 생각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현실적 한계 때문에 그랬는지, 그래서 다시 기회가 왔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지 제대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대중·노무현은 서로 반쪽이었다

노 대통령님의 사료는 다른 대통령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 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 두 분 대통령의 콘텐츠가 두드러진다”며 “노 대통령님의 콘텐츠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가장 가까웠고, 그래서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전시작전권 문제만 해도 그렇고 남북 화해냐 충돌이냐,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전과 후퇴 등과 같이 지금 돌아가는 상황과 연결되는 메시지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두 분 대통령이 따로 계신 게 아니라고 본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지가 거의 같다. 드라마틱하고 다이내믹한 삶도 그렇고, 공유하는 게 너무나 많다.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께서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내 육신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하신 것은 정말 옳은 말씀이다. 진짜 서로가 반쪽이었다. 요새 그런 생각이 더 깊어간다. 두 분이 다 그립다.”

그는 사인을 부탁받으면 꼭 두 마디를 함께 쓴다.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 그가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위 위원장으로서 국민들께 꼭 부탁드리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한다.

“혹시 노 대통령님과 관련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게 있으면 재단에 전달해주셔서 모두 같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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