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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 4인 좌담] “노무현은 따뜻한 용맹남, 그리고 매력남”

2011.01.26







양정철(재단 전 사무처장) : 재단에서 마련한 좌담, ‘노무현과 여성’이란 주제로 네 분을 모시고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고, 그 분에 대한 이해도 깊고, 무엇보다 입심이 좋은 분들을 모셨습니다.(웃음)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님,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님,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님,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님. 네 분 다 대통령님과는 인연이 깊죠? 각각의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첫 만남 느낌은 ‘포스’ ‘배려’ ‘겸손’

유시춘 : 87년 6월항쟁이 끝나고 노동자들을 돕다가 구속돼 마산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노 변호사를 면회 가서 처음 봤어요. ‘저 사람, 변호사 맞아?’ 싶을 만큼 농사짓는 분 같은 모습이었는데도, 처음 보는 순간 압도당하는 느낌이랄까, 전율을 느낄 만큼 강렬한 포스가 느껴졌던 기억이 생생해요. 내가 그때 이미 사람을 알아본 것 같아.(웃음)

최민희 : 나는 <말>지 기자 출신인데, 92년 초 <민주광장>이라는 잡지로 옮겨 일할 때 인터뷰를 하면서 뵈었죠.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저희 사무실로 오시겠다는 거예요. 다른 정치인과 참 달랐어요. 첫 인사도 수줍게, 겸손하게 하셨고. 이후 언론문제에 천착하고 직접 용기 있게 싸우는 유일한 정치인이셔서 언론운동 쪽에선 천군만마 같은 분이었어요.

조기숙 : 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장 하실 때 다른 연구기관 책임자들과의 연대회의에 가서 만났던 게 처음이에요. 회의 끝나고 어떡하다 나만 남아 민방위훈련에 걸려서 못 나가게 됐어요. 대통령님도 후속 일정 때문에 거기 남아 있다가 내가 뻘줌하게 혼자 있는 걸 보고 “혼자 있기 심심할 텐데 같이 얘기나 하자”고 일부러 챙기는 거예요. 정치인이 그렇게 배려하는 걸 보고 참 인상적이었어요.

양정철 : 노무현 하면 많은 여성들이 2002년 대선 시절 장인의 좌익전력 문제로 공격당할 때 “그럼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후보직을 버리겠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에 마음을 움직였죠?

최민희 : 상상초월의 답변이고 대응이었어요. 오죽하면 한나라당 지지하는 친정아버지가 “노무현이 대통령 될 것 같다, 니 엄마도 그 얘길 듣고 가슴 설레 한다. 큰 일 났다”고 하셨을 정도였으니까요.

조기숙 : 나는 여성이나 부인의 입장에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정치학자로서 내가 아는 노무현 하면 소신과 의리가 있는 사람! 그런 분의 철학에서 보면 당연한 걸로 봤어요. 오히려 그런 반향이 너무 놀라웠는데….

장하진 : 노무현다운 답변이었죠.

유시춘 : 마음에서 우러나온 얘기지만, 가장 야비한 공격에 대한 가장 따뜻한 대응이었죠.



여성정책과 인사에서 남달랐던 이해와 배려

양정철 : 대통령님 취임 후 여성정책 얘길 좀 해 볼까요?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남성 중심의 우리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꾸기 위한 정책적 배려를 많이 했죠? 호주제 폐지, 성매매특별법 제정, 여성가족부 확대개편, 보육정책, 여성 일자리 확대정책 등등. 또 실제로 여성정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보는데 성과를 한 번 짚어 주시죠.

장하진 :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정책에 대해 적극적이라는 게 잘 알려져 있지만, 노 대통령은 경상도 사나이란 선입견 등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에 여성정책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거의 완성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UN에서도 놀랐어요. 한국의 예를 다른 나라들이 따라 배워야겠다구요. 선진국들은 우리가 이룬 여성정책을 거의 100여년에 걸쳐 이루는데 한국은 그 짧은 시간에 이루는 걸 보고 후진국들이 한국을 따라 배워야겠다고 평가가 아주 좋았어요. 대통령님은 여성정책을 정말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죠.

여성가족부로 개편하자고 한 분도 대통령님이에요. 당시 보건복지부가 반대했는데. 가족정책과 보육정책이 중요하다, 21세기엔 가족정책이다, 어려우면 가족에 기댄다고 하는데 이젠 기댈 수가 없다, 이젠 한 사람이 아파도 돌볼 사람이 없게 됐다, 여성정책을 너무 작게 보면 안 된다, 이렇게 역설하고 추진한 분이 대통령님이죠.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 여성부 폐지한다고 하니까, 곧 퇴임하실 대통령님이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여성부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해 주신 거 기억나시죠. 결혼이민자정책 갖고 법무부랑 싸울 때도 항상 여성부 편을 들어주셨어요. 그런 점이 제대로 평가됐으면 좋겠어요.

양정철 : 성매매특별법 제정도 대통령님 의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조기숙 : 시행과정에서 반발이나 진통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보세요. 기업의 경우 과거 성 접대 같은 데 쓰이던 음성적 접대예산이 이제 문화공연 티켓 선물이나 건전한 문화후원 쪽으로 이어지고 있잖아요. 기업인들한테 직접 들은 얘기예요.

장하진 : 여성계도 이명박 정부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절감하는 것 같아요. 여성정책이 자연적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 두 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는 걸 말이에요. 여성계 지위 향상도 그렇고. 복지정책은 김대중 정부로부터 계승 발전한 것이지만, 보육정책은 전적으로 참여정부 성과거든요. 예산이 3천억원에서 1조3천억원으로 급증했으니까요. 보육의 10년 대계를 디자인했어요.

양정철 : 인사에서 여성에 대한 배려도 컸죠?

최민희 : 언론계나 방송계를 보면 여성이 처음으로 어느 자리를 맡은 게 많았어요. 참여정부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조기숙 : 참여정부 출범과 동시에 강금실(범무), 지은희(여성), 한명숙(환경), 김화중(복지) 등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여성각료로 시작했죠. 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총리(한명숙), 사법사상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전효숙)과 대법관(김영란) 탄생 등도 참여정부 시절인데, 그 의미가 적지 않죠.

장하진 : 열린우리당 시절 여성의 비례대표 급증도 대통령님 의지가 컸죠. 대통령님이 평소 여성의 정치진출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지금은 대부분 정당이 그렇게 가고 있죠.

노무현의 리더십은 ‘여성적 리더십’이다?

양정철 : 대통령님이 정책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성에 대한 배려가 많았던 분 아닌가요?

최민희 : 정치인이 시민단체 사람들 만나도 얘기를 건성으로 듣는 경우가 많은데 대통령님만큼은 ‘아, 귀 기울여 내 얘기를 듣고 있구나’라는 걸 느껴요. 특히 여성들이 있으면 일부러 의견을 물어보시기도 하고. 악수할 때도 여자들이 뒤로 좀 빠지려고 하면 대통령님이 먼저 와서 “여긴 서열이 없습니다. 저랑 악수합시다”라고 하시구요. 그러는 남자 정치인 잘 없거든요.

유시춘 : 늘 경청해주는 자세가 있죠. 아마 ‘노무현의 여성적 리더십’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세심하게 깊이 이해하는 여성적 리더십의 단면….

조기숙 : 청와대 가서 뵈니까 수평적 통합의 리더, 투명한 표리일체의 리더라는 걸 느꼈어요. 저는 일 때문에 싫은 소리를 많이 드린 편이거든요. 특히 “싫어도 이벤트를 좀 하시라”고. 여러 번 깨졌어요.(웃음) 그리고선 마음이 아프신지 주말에 전화를 하세요. 와서 저녁이나 하자고. 미안하다는 말씀도 살짝 비치시면서 마음 상한 게 있으면 풀라고. 또 청와대 좌석은 다 서열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성이 있으면 다른 서열 깨고 여사님 옆에 앉게 하시고. 말 안 하면 꼭 의견 물어봐주시고.

양정철 : 대통령님의 그런 면모의 배경은 뭘까요?

조기숙 : 그 분의 민주주의 철학 아닐까요? 민주주의는 완성이 없고, 민주주의의 궁극은 문화에 있다고 봤을 때,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니까, 일상의 실천, 일상속의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 같아요.

최민희 : 독서가 아니었을까요. 다방면에 다독이시잖아요. 책을 늘 접하면서 가지고 있는 감수성, 아주 예민한 작가적 감수성과 섬세함이 바탕이 돼서 여성적 따뜻함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하진 : 그런데 또 굉장히 이성적인 분이잖아요. <여보 나 좀 도와줘>를 보면 노동 인권변호사가 돼 당시 진보적 서적들을 접하면서 ‘여성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꿨다’ ‘그 다음에는 부부싸움도 거의 안했다’고 하시잖아요. 여성에 대해서는 약자에 대한 착한 마음도 있고, 이성적으로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면도 있겠죠.

유시춘 : 대통령님의 여성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주는 얘기가 있어요.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야인 시절에 꼬마민주당 동지들과 식당을 했잖아요. 그때 근처 음식점 종업원들에게 대통령님 인기가 아주 좋으셨대요. 왠지 아세요? 항상 여성종업원들한테 존댓말을 쓰고, 물심부름 하는 아가씨한테도 존댓말을 썼다는 거예요. 정치인 가운데 자신들을 그렇게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대접해주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고 기억한다는 거예요.



노무현은 연인? 남편? 리더? 당신이라면…

양정철 : 여자 입장에서, 남자 노무현의 매력은 어떤 점이란 생각이 드나요?

최민희 : 용맹스럽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어렵더라도 필요하면 딛고 일어나서 하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용맹! 부산에 출마한다, 서울에서 다 버리고 내려간다, 이런 게 가장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유시춘 : 오해하지 마세요. 여성에게 남성은 힘의 상징이거든요.(웃음) 통상의 여성들이 갖기 어려운, 거대한 권위에 도전하는 용기, 절대적 권위에 대한 그리고 옳은 것에 대한 의로운 용기! 난 그거라고 보는데.

장하진 : 나는 진실남을 좋아해요. 편안한 남성. 애인이든 남편이든 그 앞에서 긴장하게 되는 남자는 아주 꽝이야. 앞에 가서 얘기하면 편안하고, 뒤돌아서 나오면 흐뭇한 남자. 대통령님이 그렇지 않나?

조기숙 : 나는 유능한 남자 좋아해요. 노무현만큼 스마트한 남자를 본 적이 없어요. 회의 때 보면 복잡하고 결론이 나기 어려운 난해한 사안도 착착 갈래를 치고 정리하시더라구요. 지적으로 유능하고, 업무능력에서도 유능한 남자의 매력….

양정철 : 그냥 가정입니다. 리더로서의 노무현, 연인으로서의 노무현, 남편으로서의 노무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면 각각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유시춘 : 난 연인. 좋잖아.

장하진 : 나는 셋 다야.

조기숙 : 나는 당근 리더.

최민희 : 나는 리더. 아니면 그냥 친구.

양정철 : 왜요?

장하진 : 연인이면 재미있을 것 같고, 남편으로는 믿을 수 있는 남자니까. 그런데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리더.

최민희 : 친구라면 수없이 많은 얘기를 자분자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유시춘 : 다들 너무 공익적이야. 그렇게 멋진 남자를 왜 리더로 가져? 연인으로 가져야지.

조기숙 : 아니야. 남편으로는 아내의 희생이 너무 클 것 같아요. 나는 그런 남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웃음) 여사님만큼 되질 않아. 참모로 모셨던 노무현이 너무 좋아요. 나는 노무현의 참모가 제일 좋고, 그게 가장 영광이에요.

여성들의 눈물, “자기 슬픔과 노무현 슬픔의 동일화”

양정철 : 대통령님 서거 후 500만 조문객 가운데 특히 여성이 눈에 띄게 많았던 걸로 기억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회학적으로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요?

유시춘 : 서울역에 오셨던 김대중 대통령이 정답을 내놨어요. 여성들이 많고 정말 슬퍼했다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셨냐 하면, “자기 슬픔과 노무현의 슬픔이 동일화돼서 우는 사람들이다” 이렇게요. 사회적으로 별로 성공하지 못한 평범한 여성들, 자신의 삶이 고단하고 슬픈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힘센 놈들 등쌀에 자기 목숨을 내준 노무현의 처지가 자신의 것으로 동일화 됐다는 말씀이겠죠.

문학으로 보면 노무현의 죽음은 희랍 비극의 원형이에요. 불세출의 영웅이나 왕 또는 천재가 주어진 거대한 운명의 벽과 싸우다가 처절하도록 슬프게 명멸하거나 소멸하거나 무너져버리는 것이 희랍 비극의 정의거든요. 여기서 독자들은 어떤 공감을 얻느냐? 그걸 보고 울면서 자기정화 작용을 한다는 것이죠. 거기서 나온 말이 카타르시스에요. 고학력 주류 중심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로 비주류인 노무현이 맨 정점까지 올라갔다가, 아직 건재하고 있는 운명적 벽에 좌절돼서 돌아가신 것, 비극의 원형이죠.

최민희 : 나는 이명박 폭정 아래 이뤄진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이 여성의 모성을 자극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효순이와 미선이가 죽었을 때 어느 할머니가 “억울하고 불쌍하다”고 하면서 우시더라구요. 단 두 마디. 억울하고 불쌍하다. 그거 아닐까요?

조기숙 : 임기 말에 어떤 데이터를 보면 대통령님 돌아가시기 전에 여성들의 (노무현) 지지가 남성을 앞질렀어요. 특히 20~30대에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주류화, 여성의 진보화, 그리고 젠더갭(여성과 남성의 투표차이)이 10년 전부터 나타났거든요. 그러면서 20~30대가 압도적 지지층이 된 거죠. 우리 사회에 선진국 징후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감성적 현상도 분명 있지만 이성적 영향도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하진 : 여성은 전통적으로 소외된 집단이잖아요. 대통령님 돌아가신 것을 자기와 비슷한 처지로 동일시한다는 분석이 일리가 있어요.



마지막 만남, 심장에 남는 처절한 한 컷

양정철 : 네 분 모두 대통령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분들인데요. 가장 심장 깊이 남아 있는 대통령님과의 잊지 못할 추억이나 장면 딱 한 컷을 꼽는다면요?

유시춘 : 누가 물어봐도 나는 죽기 전까지 평생 잊지 못할 일이 그 날이에요. 2009년 4월 30일. 검찰 출두하기 전날. 잘 다녀오시라고 다들 내려갔잖아요. 대통령님이 연거푸 담배 두 대를 피우시고 차 있는 데까지 내려가셨는데, 여사님이 통곡을 하시니까 다시 올라오셔서 ‘괜찮다’고 하시며 위로하셨거든요. 그때 나를 보셨어요. 내게 오셔서 손을 잡으면서 “유 선생 글 봤어요(당시 유시춘 전 위원은 검찰수사에 분개해 ‘나는 노무현이로소이다’를 공개적으로 쓴 적이 있다). 날 변호해줄라고 한 모양인데, 순 억지데”라며 쓱 웃고 가셨어요. 그런데 나는 너무 가슴이 미어져서 차마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게 마지막이에요. 그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그 날 따뜻한 위로말씀을 더 드리는 건데.(울음) 내가 꿈을 잘 안 꾸는데, 올해 4월 30일에 대통령님이 꿈에 나타났어요. 어쩌면 딱 1년 되는 날.

최민희 : 나도 그 날이에요. 마지막으로 악수하고 한동안 대통령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뭔가 위로를 해야 하는데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대통령님 눈이 참 서글프게 느껴졌는데…. 그 눈빛이 늘 생각나요. 대통령님 뵌 마지막 날이 돼 버렸어요. 그 마지막에 한마디를 못한 게…(울음). 그 애처로운 눈빛이….

장하진 : 그 날은 정말, 너무나 무거워서, 우리도 말할 수 없고 대통령님도 무슨 말씀하시기가 어려웠던 것 같고…. 그날이 참…. 그 전에 봉하를 어떻게 가꾸시겠다고 밝게 말씀하시던 모습과 교차도 되고, 그 전에 여러 가지 앞으로의 얘기를 나눴던 꿈같던 때도 자꾸 기억나고….

조기숙 : 당시 조선일보 왜곡보도 때문에 그날 가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에요.(울음) 서거 얼마 전까지 대통령님과 <진보의 미래> 연구 때문에 비공개 카페에서 온라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요. 제게 주신 마지막 답글, “조 수석, 처음엔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참 따뜻한 사람입니다”라는 문구가 마지막이 돼 버렸어요. 그 후 더 힘들어 하실까봐 말을 걸지 못했는데….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마지막까지 따뜻한 말을 남기고 가셨어요.

양정철 : 각자에게 너무 아픈 상처를 제가 괜히 꺼냈나보군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이겨내기 힘든 부분입니다. 오늘 네 분과 함께 대통령님을 회고하고 추억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잘 몰랐던 여성정책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여성에 대한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와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푸근한 추억여행, 알찬 평가의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네 분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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