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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홍준 인터뷰] 봉하를 ‘대통령의 꿈’ 잇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다

2011.02.14





“대통령께선 세상을 떠나시면서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중략)
국민의 마음이 이럴진대 어떻게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는 겁니까.
우리는 차라리 비석을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이 잊을 수 없는 추모의 장면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역사의 공간으로 만들어
자손만대에 증언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머무는 곳에 1만 5천 장의 박석을 깔고
거기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추도문을 새겨 넣어
그것을 당신께 바치는 비문을 대신했습니다.
봉분으로 삼은 고인돌 위엔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겼습니다.”


유홍준 봉하재단 산하 ‘봉하마을 공간조성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5월 23일 1주기 추도식에서 읽은 <노무현 대통령 묘역 조성을 마치고 드리는 글>의 일부다. 그는 당시 ‘아주작은비석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나, 묘역 완공 후에는 새롭게 만들어진 ‘봉하마을 공간조성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국민도서’라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딱딱한 소재를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은 그의 걸출한 능력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걸죽한 입담은 가히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별칭과 잘 어울린다. 대통령님과의 인연도 책으로부터 비롯됐다.

“2004년 9월 문화재청장 임명장을 받는 날 대통령님을 처음 만났다. 대통령님은 그전에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어서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들었다. 좋은 문화유산 전문가라고 생각한 것 같다.”



“대통령 독차지 안 된다고 칼럼 하나 쓰시죠”

그는 참여정부에서 문화재청장을 3년6개월간 역임했다. 재임 중 청와대에서 대통령님을 대여섯 번 따로 뵈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님이 나하고 있을 때는 편해 보였다”고 기억한다. 왜 그랬을까? “다른 장관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업무 이야기를 꺼내는데, 나는 그런 얘기는 안 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아마도 천성적인 이야기꾼 기질은 청와대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했을 터이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노 대통령의 유홍준 청장에 대한 첫 대면 지시는 다소 의외였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개방에 대한 칼럼을 쓰라는 것이었다.

“유홍준 청장님, 칼럼 하나 쓰시죠.”

“갑자기 무슨 칼럼을….”

“북악산 같이 좋은 곳을 대통령이 혼자 독차지하면 어떡하냐. 그래선 안 된다. 개방해야 한다. 그런 칼럼을 쓰십시오.”

“그건 대통령님이 지시하시면 되지 않나요.”

“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이미 북악산 개방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경비와 외곽경비를 각각 책임지고 있는) 경호실도, 국방부도 자기들의 일이 아니라고 질질 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개방을 하려면 그런 여론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 청장은 곧바로 문화재청에서 국가사적인 서울성곽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북악산 개방을 추진했다. 그러나 바로 제동이 걸렸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난리가 났지. 문화재청장이 뭔데 그렇게 하냐고. 그래서 문재인 민정수석한테 얘기를 했지. 그랬더니 문 수석이 대통령님께 보고를 했다더군.” 대통령님은 왜 개방을 안 하느냐고 질타하셨고, 그 때부터 일사천리로 전면개방이 진행돼서 북악산은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봉하 사저 자리를 추천하다

참여정부 때 가까이에서 지켜본 대통령님은 그에게 “진솔한 분”이다. “가식이 없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었다. 타자에 대한 배려, 특히 서민들에 대한 배려를 우선 생각했다. 몰라서 못했지, 알면서 못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대통령님과의 인연은 퇴임 후 구상과도 이어진다. “대통령께서 퇴임 후 어디에서 사는 게 좋겠냐고 물으셔서, 아무래도 고향인 봉하가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 그 후 지금 봉하 사저 자리도 그가 추천했다고 한다.

“애초에는 지금의 대통령님 묘역 옆 모퉁이 쪽에 사저를 지으려고 했지. 그래서 여기는 내가 보기에 음택(묘자리)이지 양택(집터)이 아니라고 얘기했지. 나는 지금 자리를 추천했고, 그 곳으로 결정이 됐지.”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후 그는 운명처럼 ‘아주작은비석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대통령님이 돌아가신 다음날 내가 건축가 승효상씨에게 전화를 했지. 묘역은 무조건 우리가 해야 한다고. 그 때부터 준비를 했지. 그 후 며칠이 지났을 때 권양숙 여사께서 문재인 실장을 통해 묘역을 맡아달라고 연락을 하셨더라고.”

그는 대통령님 묘역을 조성할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묻자, 불쑥 돈 얘기를 꺼냈다. 그는 “묘역을 만들 때 예산은 아예 생각도 안 했고,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에게 부탁할 때도 돈 얘기는 안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부탁을 받은 분들은 모두 흔쾌히 그 부탁을 다 들어줬고, 그래서 참 고마웠다고. 그는 21세기식 고인돌 개념으로 가져간 대통령님 묘역 조성이 “수학으로 치면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굉장히 복잡한 미적분”이었다고 회상한다.

“화장을 하고 납골을 안치하고 아주 작은 비석을 세워야 하는데, 이걸 다 소화하기 위해 화장을 안치했던 통일신라 방식으로 안장하고, 위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형식을 취하고, 뒤에는 조선시대 식으로 곡장을 두르고, 그것을 디자인하는 건 이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맡고, 그렇게 했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묘역”

그 과정에 전문가들만 참여한 것은 아니다. 1만8천명이 묘역 바닥에 깔리는 국민박석을 신청했다. 그의 말처럼 국민박석 캠페인은 “묘역의 기본을 국민헌금으로 조성하는 방식, 그 자체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일”이었다. 묘역을 설계한 승효상교수는 후일 “참배를 마친 이들이 바닥에 쓰인 글들을 읽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이리저리 소요하며, 기억을 더듬고 다른 이의 마음을 읽고 나누는 그 장면이야말로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묘사했다.

유 위원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묘역 조성의 개념을 설명했다.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승효상씨는 그의 저서 <노무현의 무덤-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설명했다.

“묘역의 면적은 1천 평에 가까우니 어떻게 보면 ‘작은 비석’에 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은 묘 자체만으로는 5평이라 작다. 그것도 돌 하나가 얹혀 있을 뿐이어서 지극히 검소하다. 그러나 이 묘를 한정하는 공간은, 죽은 자를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산 자인 우리 모두를 위한 광장으로 쓰이는 1천 평의 넓이이며, 또한 이 공간은 주변의 산지와 농지로 확장되니 그 느낌은 대단히 크다. 그래서 결코 누추하지 않다. 돌의 정교한 세공이 필요한 묘역은 자칫하면 화려해지기 쉽다. 여기서는 극도로 절제될 것이고 비움을 주제로 구축될 공간이어서 사치와는 엄연한 거리가 있다.”

국민박석은 미술가 임옥상씨가 그린 묘역 바닥 평면도 ‘사람사는 세상’의 길 사이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이 길들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골목길일 수도 있고, 어떤 마을의 큰 길과 작은 길일 수도 있다. 유 위원장은 “묘역을 국민박석과 함께 사람사는 세상과 잘 어울리는 마을로 형상화한 것은 환상적인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봉하마을 마스터플랜과 사저 개방

묘역이 일단 자리를 잡은 후에는 봉하마을 공간조성위원회가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대통령의 길’과 같은 공간을 주변에 배치했다. 그는 봉하 묘역은 대통령님의 정신과 가치를 계속해서 후대에 살려놓는 공간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님이 구상했던 것을 이어받고, 거기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많은 방문객들까지 봉하라는 공간에서 해소해줘야 한다. 사저에서부터 화포천과 봉화산까지, 그 영역이 넓어도 그 공간의 진정성은 묘역이다. 누가 봐도 묘역이 잘 조성됐기 때문에 그 다음에 들어가는 공간 구성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공간조성위원회는 현재 ‘봉하마을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있다. 봉하마을의 경관을 살리면서 방문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쉼터와 주차장을 배치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늦어도 5월까지는 확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안을 놓고 하나씩 따져보는 중이다. 봉하 사저도 개방할 예정이다.

“사저를 기념관으로 만드는 것은 구체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통령님 살아계실 때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살아계실 때 인간적인 면과 대통령으로서 면모, 이 두 가지를 다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꿈’으로부터 시작되다

현재 공간조성위원회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봉하마을의 ‘논과 밭’이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봉하마을의 논과 밭을 손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논과 밭이다. 들녘이 있기 때문에, 또 화포천이 있기 때문에 봉하마을은 대통령님의 구상이 휠씬 멋있고 빨리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을 봐도, 드골 묘소는 그 지역의 독특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나온다. 향토적 서정을 살리면서, 대통령님 추모공간으로서의 건축적·조경적 기능을 살려가야 한다.”

봉하에서는 오늘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 친환경 생태마을 만들기의 분주한 발길이 이어진다. 봉하는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후일 역사는 이렇게 서술할 것이다.

“모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꿈으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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