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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원사연] 희망돼지에서 ‘노무현의 꿈’을 다시 보다

2011.02.15


희망돼지에서 ‘노무현의 꿈’을 다시 보다
- 재단에 저금통 보낸 사연 “2002년 희망돼지 캠페인 감동을 잇고 싶다”



지난주 금요일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처에 소포 한통이 배달되었습니다.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열어 보니 꼬깃꼬깃한 만원권 10장과 천원권 3장을 머금은 희망돼지 저금통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성들여 쓴 메모가 놓여 있었습니다.

“재단에 전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대통령님 생각에 저릿합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많이는 못합니다. 다만 저금통 채운 거 하나로 마음이 급해져 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생전 노력하셨던 일에 아주아주 미약하게나마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모두들 너무 감사해요. 건강하세요. 부디.” -천안에서 노빠? 한명이-

‘죠이’님이 보낸 한 통의 소포

소포를 보낸 ‘죠이’님은 재단 설립 초기부터 월 회원으로 꾸준히 후원해 오셨습니다. 특별히 희망돼지로 다시 후원한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는 입장에서 부담 없이 후원금을 잘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매년 일상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오백원짜리 동전을 모아 재단에 보내겠다는 생각을 한거죠. 얼마전 희망돼지가 꽉 차 열어보니 7만5천원이었어요. 만원권으로 바꾸고 너무 적다 싶어 조금 돈을 더 보탰어요. 평소에 대통령님을 늘 존경해 왔는데 서거하신 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방법을 찾다가….”

대통령님 이야기를 하다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흐렸던 ‘조이’님은 잠시 후 희망돼지를 택한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2002년 대선 때 그런 활동이 있었다는 것은 알아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사정상 함께 하지 못하고 투표만 했지만, 이제 다시 무언가 해야 된다는 생각에 대선 때 가슴을 벅차게 했던 희망돼지를 떠올렸던 겁니다.”

‘희망돼지’는 지난 2002년 대선 때 선거에서 수동적인 자리에만 머물던 유권자들을 정치의 주인공으로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아이콘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과정에 대한 기록물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각성에서 실천으로

‘희망돼지 저금통’이란 100원 동전으로 꽉 채우면 이만원 정도 들어가는 흔한 돼지저금통입니다. 이 저금통에 국민성금을 모아 정치자금이란 명목의 검은 커넥션을 뿌리 뽑고 정경유착과 부패를 청산하자는 유권자 캠페인이었습니다.

2002년 여름, 노하우(노무현 홈페이지) 게시판에 ‘희망돼지 모금’ 제안이 처음 올라왔을 때 약 두달 간 별 호응이 없었습니다.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정치인을 돕자는 취지의 이 제안은 당시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낯선 주장이었습니다.

이 때 여당의 한 중진인사의 입에서 그 유명한 ‘설렁탕 발언’이 나왔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내게 설렁탕 한 그릇 사준 적 없다.”는 이 발언은 ‘노무현 흔들기’가 정점에 다다른 시점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시민들은 분노와 탄식을 쏟아냈습니다. “국민경선을 통해 선정된 국민후보에게 어떻게 저런 망발을 할 수 있나.”

그러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노사모 회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원들은 전국을 돌며 희망돼지를 분양하겠다며 트럭을 빌렸습니다. 호응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첫 분양지인 대구 경북대학교 북문 앞은 분양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줄로 횡단보도 통행에 지장이 초래될 정도였습니다. 휴가 나온 군인들, 길을 건너던 어르신들도 이 진귀한 광경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곧 전국 각지에서 트럭 순회 요청이 쏟아졌습니다. 트럭이 가는 곳마다 지지자와 시민들이 나와 저금통을 분양 받고 자신이 모은 저금통을 쌓아놓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언론도 이 강렬한 캠페인에 주목했습니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노무현 현상’이란 타이틀로 크게 보도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심금을 울린 사연들

이 시기 지방선거와 월드컵을 거치며 바닥을 치고 있던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도 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희망돼지는 자발적이고 유쾌한 정치반란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가는 곳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시민들은 희망돼지를 양손에 쥐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희망돼지 캠페인에 곧 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지역에 따라 선거법상 위법성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 하던 선거관리위원회가 결국 희망돼지 분양을 전면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여당도 지구당 차원에서 하던 모든 캠페인을 중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터진 시민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전국적으로 20여만 개의 희망돼지가 분양되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의도 당사 지하창고에는 희망돼지 저금통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저금통을 갈라 동전을 분류하는 작업에만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한 달간 매달렸습니다. 그냥 동전과 지폐만 머금지 않은 저금통이 많았습니다. 시민들의 사연과 염원이 담긴 작은 메모들이 자원봉사자들의 심금을 울리곤 했습니다.

“이렇게 후원금을 낼 수 있어서 가슴이 벅차다” “병으로 여생이 얼마 안남았지만 당신이 잘되는 것은 꼭 보고 싶다” “아빠의 20년 근속 기념 금메달과 함께 보낸다” 등 수많은 메시지들의 공통점은 ‘희망’이었습니다.

대선이 끝난 후 악의적인 언론은 희망돼지 캠페인을 대선을 앞둔 깜짝 이벤트 정도로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은 투표권 행사 외에도 정치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시민 민주주의의 보폭이 넓어진 것입니다.

“희망돼지는 개미들이 뿌린 희망의 씨앗”

2004년 3월, 고등법원은 희망돼지 분양에 참여한 문성근 운영위원에게 희망돼지가 불법 광고물에 해당한다며 원심의 무죄 선고를 깨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문 위원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70여명이 기소 당해 고초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2006년 8월, 노 대통령은 이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대선 때 고생한 분들인데, 한 번도 못 만나 마음에 큰 빚을 진 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현하셨습니다. 참석자 몇 분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을 때 변호사를 살 돈이 없어 고생했다”고 하자 노 대통령도 감정이 북받친 듯 한동안 아무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노사모 닉네임 ‘시드윈’님은 2002년 가을 부천시 송내역 앞에서 희망돼지 저금통을 분양했다는 이유로 선관위로부터 고발을 당했습니다. 1년여의 재판 끝에 결국 2004년 4월, 대법원에서 200만원의 벌금형과 5년간 자격정지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는 최종변론에서 판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희망돼지는 말 그대로 이 땅에 희망을 생산하기 위해 개미들이 뿌린 씨앗입니다. 희망으로 살찐 희망돼지들이 장차 파렴치하고 부패한 정치를 소멸시키고 결국 우리나라의 미래를 자랑스럽고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지난해 가을, 부천의 한 선술집에서 만난 ‘시드윈’님께 희망돼지에 대한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습니다.

“그 때 자격정지형으로 출강하던 학교에서 한동안 면직됐지. 작년에 사면복권 되어 요즘 다시 학교에 나가고 있어. 그런데 노짱님 같은 분이 계시면 꼭 다시 하고 싶어. 진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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