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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광주경선을 회상하며] “노무현” 연호하며 목놓아 부른 ‘부산갈매기’

2011.03.15


광주에서 “노무현” 연호하며 목놓아 부른 ‘부산갈매기’
- [3·16 광주경선, 그날을 회상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선택”

양길승/전 청와대 부속실장



과연 그날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때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2002년 당시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제의 도입으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단 하루에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16개 시도를 순회하며 한 달 반 동안 치르는 장기 레이스였다. 어떤 언론은 ‘16부작 명작 드라마’라고 평했다. 쉽게 1등을 점치기 어렵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광주지역 언론들은 3월 16일 치러지는 광주경선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광주경선이 향후 정치적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서도 관심이 무척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죽어도 잊지 못할 그 순간

3월 16일 오후 6시. 경선장 안에 있는 모든 시선과 TV 카메라는 개표 결과 발표에 집중됐다. 개표 결과는 득표순대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고 기호순으로 발표하였는데, “기호 1번 김중권 후보 투표수 148표 투표율 9.4%입니다. 기호 2번 노무현 후보 득표수 595표 득표율 37.9%입니다.” 첫음절 ‘5백이라는 소리에 체육관 안에 있던 노사모 회원들과 함께 동지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뒤의 소리는 잘 듣지 못했다. 스탠드 한 쪽에 모여 있던 우리는 서로 끌어 안고 엉엉 울었다.

“노무현”을 연호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부산갈매기’였다. 죽어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울산 경선에서 1등할 때만 해도 지역적인 정서에 편승한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해 버린 것이다. 광주는 영남출신 후보를 당당히 1위로 당선시켜 지역주의 망령을 눌러버렸다.

노무현 후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던 그 시간들이 무척 그리워 목이 메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역주의 타파와 정권 재창출의 열망을 담아 활동했던 동지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처음 노 대통령을 만난 것은 2001년 12월.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서갑원 의전팀장과 함께 장관실로 갔다. 4시부터 6시가 다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대화에서 그 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자리가 마무리 될 무렵 노 대통령께서 “양 동지! 우리 힘을 모아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라고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라며 그 분의 양 손을 꽉 쥐었다. 돌이켜보면 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답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더욱 그리워진다.



서러움과 고마움이 교차했던 나날들

경선을 앞두고 광주지역 국회의원이었던 모 지구당 위원장은 노 후보 지지를 표명했지만 얼마 후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지지를 약속한 그 지역 대의원들도 돌아섰다. 노 후보를 모시고 가던 중 우연히 그 위원장의 보좌관과 사무국장을 입구에서 만났다.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지구당 여성 당직자 두 사람이 나를 복도 쪽으로 데려가서 우리는 위원장 시킨 데로 하지 않고 노 후보를 지지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서러움과 고마움이 밀려오며 눈물이 더 흘렀다.

경선 하루 전인 3월 15일 저녁 무렵 서울에서 윤석규 정책팀장이 내려왔다. 서로 고생한다는 말과 함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윤 팀장은 “양 팀장님, 내일 몇 표나 예상하고 계시죠”라고 물었다. 점검해본 결과를 가지고 “한 510표 정도 예상이 되는 데요”라고 답했다. 그는 정색을 하며 “부풀리지 말고 나올 수 있는 표만 정확히 말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고서 사무실을 떠났다. 다음날 경선결과가 나온 후 윤 팀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어제는 정말 미안했다고 어깨를 두들겼다.

경선이 끝난 후 우리는 뒤풀이를 하기 위해 광주 금호동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1등을 하든 아니든 그동안 고생한 노고를 서로 위로하기 위해 예약해 두었던 곳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대전으로 가시기 전에 광주 동지들을 보고 가시겠다고 노 후보가 그 장소를 찾았다.

노무현 후보께서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식당으로 들어서자 누군가의 선창으로 “노무현” “노무현”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 함성과 박수소리에 그 식당 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가 들썩 였다. 역사의 밑동이 둥둥 울린 것이다. 노 후보는 동지들을 진정시킨 후 밖에 있는 사람부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악수를 하신 후 대전으로 떠났다.



광주경선 하면 생각나는 이름 ‘김정현’

광주경선 하면 항상 내 가슴 속에 함께 하고 있는 분이 있다. 이 분의 공로가 최고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분이다. 이 글을 빌려 꼭 소개하고자 한다. 김정현 협동학원 원장. 광주경선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분이다. 경선 동안 내내 궂은 일을 묵묵히 도맡은 숨은 공로자다.

그는 1996년부터 농협승진고시학원인 협동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께서 선거에 낙선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 김 원장은 학원 특강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노 후보가 정치적 기반이 거의 없었던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그가 물밑 작업을 도맡아 사람들을 모았다. 광주경선팀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사심이 없었다. 생색내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매우 겸손했다.

주변에서 왜 되지도 않을 사람을 지지하고 다니면서 고생하느냐는 소리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핵심 공로자지만 참여정부 시절 평범한 시민으로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성공만을 기원하신 분이다.

오는 3월 16일에도 그와 함께 2002년 그날을 회상할 것이다.



노 대통령의 광주에 대한 깊은 애정

광주경선은 이른바 ‘노풍’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서 작용했다. 3월이 되기 전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일들이 일어났다. 지지율이 급속히 상승세를 탔다. 광주가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길을 먼저 선택한 결과였다.

민주시민으로서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타파하고자 하는 결단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광주시민은 그렇게 80년처럼, 87년처럼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나는 ‘3․16 광주정신’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는 내 생각만이 아니다. 광주경선이 끝난 후 지역의 한 언론은 3월 16일 광주경선을 ‘광주정신’이라고 칭했다.

광주시민은 30여년간 내려온 지역감정의 묵은 고리를 끊어 내고 싶었다. 또 정권 재창출이라는 시대적인 사명감에 차있었다. 묵고 썩은 지역구도 정치를 끝내고자 했다. 동서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손길을 먼저 내민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참여정부 집권 이후 광주지역 일부 언론은 노 대통령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고, 혹자는 이에 편승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노 대통령의 광주에 대한 애정은 깊었다.

한 일화를 소개하면 청와대 부속실장 시절 어느 토요일 오찬. 노 대통령은 모 장관을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광주를 문화중심 혁신도시로 가꾸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모 장관은 상당히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노 대통령은 광주를 문화중심도시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 광주가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하시며 어떻게든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라고 하셨다. 그 날 오찬시간은 3시간 반 이상 이어졌다.

3․16 광주경선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꼽을 수 없다. 우르러 나오는 고마움을 진정 이 글로 다 담을 수 없다. 그 분들께 건승과 행복이 항상 함께 하길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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