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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 9차 공판기] “소문으로 들었다” “기억에 없다” “그건 잘 몰라!”

2011.03.22


“소문으로 들었다” “기억에 없다” “그건 잘 몰라!”
- [9차공판 참관기] 검찰개혁 논란 속에 등장한 함량미달 증인들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좋은 일, 해야 할 일이라고 해서 아무나, 아무 때나 해도 다 좋은 건 아니다. 국회가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법개혁특위)를 만들어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나선 일이 그렇다.

지난 10일 사법개혁특위 ‘6인 소위원회’가 합의안이라고 내놓은 사법개혁안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 듯하다. 법조계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를 뿌리 뽑기 위해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퇴직 전 근무했던 기관의 모든 사건을 1년 동안 맡지 못하게 하고, 대법관 수도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2017년부터 경력법관 제도를 시행하고 ‘고무줄 양형’을 없애기 위해 대법원 소속으로 양형위원회를 설치하되 양형 기준은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눈에 번쩍 띄는 것은 판․검사와 검찰수사관의 비리, 권한남용 등을 수사하는 ‘특별수사청’을 설치하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폐지한다는 대목이다. 언뜻 보면, 국회가 드디어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분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불순하기까지 한 개혁안이다. 대검 중수부가 어떤 조직인가. 살아있는 권력의 눈짓에 맞추어 때때로 망나니 칼춤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킨 주범 아니던가. 그렇게 정권교체기 때마다 흘러간 권력을 잡아먹음으로써 어느 새, 마치 불가사리처럼, 스스로 ‘검찰공화국’의 핵심으로 힘을 불린 조직 아닌가.

‘짝퉁’ 사법개혁안... 한명숙 총리 탄압은 중수부가 아닌 특수부

무엇보다 우리 뇌리에는, 언론과 짜고, 때로는 언론을 조종하면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데 머물지 않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고 증거를 짜맞추기까지 하면서 결국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이명박 정권의 저승사자로 각인된 조직이다. 이런 사특한 조직을 없애버리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일 터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비록 지금 정상으로 작동되고 있지는 못 하지만, ‘거악척결’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검찰의 순기능만은 반드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것에 대한 심사숙고가 없었다면, 검찰의 권력을 제한하는데 따른 반사이익을 힘센 정치인, 힘센 재벌들만 누리겠다는 속셈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검찰개혁이 아니라 정치권의 검찰 길들이기에 불과한 것이지 않은가.

중수부의 기능을 각 지검 특수부로 옮기면 된다는 반론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거악척결’ 기능을 특수부에 맡기면 검찰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제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현재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정치재판이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로 목전의 지금, 이태 전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대검 중수부 이상으로 한 전 총리를 핍박하고 있는 검찰조직이 바로 서울지검 특수부인 것이다!

결국 눈에 거슬리는 조직 하나를 없애거나 기능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검찰 개혁을 완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되뇌는 ‘검찰 스스로의 개혁’이라는 염불은 여기서 일단 논외로 하자. 중수부 폐지나 검경 수사권조정 등을 통한 검찰권력 제한 내지 분산 이라는 비교적 온건한 처방 외에, 검찰 자체를 감시 및 수사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같은 제3의 강력한 독립수사기관을 만들어 검찰 권력을 견제하지 않고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결코 강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럼 그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는 공수처의 독립성은 어떻게 보장하느냐”의 문제가 대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이번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참여정부에서 이미 한번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런 난해한 문제에 대한 진전된 해결책 모색은커녕, 슬그머니 그 대상을 판․검사로만 한정시킨 ‘특수수사청’이란 ‘짝퉁 공수처’안을 내놓아 그 내밀한 속마음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국회 위세를 과시하고 정치라는 직역 이기주주의를 고수하려는 치졸하고도 얄팍한 계산에 모처럼 여야가 의기투합한 것뿐이다. 이들에게 근본적인 검찰개혁의 의지란 애초부터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므로 검찰총장 김준규가 “정치인 몇 명이 모여서 사법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런 안을 내놓는 게 무슨 행태냐”며 거칠게 반발한 것은, 심하게 짓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야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검찰의 오만’이라고 질타했다지만 그 목청이 공허한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다.

‘한 총리 재판’은 민주세력의 와신상담

그렇다. 사법개혁은 좋은 일이기도 하고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여대야소의 국회나, 정치검찰을 실컷 이용해 먹고 레임덕에 빠져 버린 이명박 정권이 지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진정한 사법개혁은 강력한 민주적 힘이 등장함으로써 사법개혁을 향한 굳은 의지와 결단이 새롭고 강하게 생성될 때까지 더욱 치열한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인들과 검찰이 이렇듯 현란한 몸짓의 ‘섀도 복싱(실제 때리지는 않고 시늉만 하는 권투)’으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는 동안에도 한명숙 전 총리를 상대로 한 ‘법정 잔혹극’은 3월 21일 9차 공판을 거듭했다.

이날 증언대에는 두 명의 증인이 섰다. 한 명은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 밑에서 중간간부로 일했던 김 아무개 씨이고 한 사람은 한 전 사장의 부친이다. 임원도 아니고 자금 흐름을 관장하는 직책에 있었던 것도 아닌 중간급 간부가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선 것은, 그가 메모광이라 할 정도로 한 전 사장 주재 간부회의 내용을 충실하게 기록한 다이어리가 증거로 채택된 탓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이 증인에게 회사 주변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검찰이 참으로 열심히, 치밀하게 뒤졌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인 2007년 3월, 4월 다이어리의 주요 내용은 주로 “한 전 총리가 한만호 사장을 돕기 위해 총리공관에서 모 대형건설사 회장들과 함께 하는 만찬자리를 만들었다. 이후 이 건설회사들이 시행하는 대형 건설수주를 따내기 위한 사내 움직임이 실제 진행됐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정황증거로 제시될 만한 것들이었다. 이해 3월은, 검찰측 주장에 따르면, 한 전 총리에게 1차분 3억원이 전달된 시기다.

문제는 증인으로 나온 김 아무개 씨가 사장이 한 말을 받아 적기는 했는데(자신에게 해당되는 지시는 *표 처리했다고 함) 그 정확한 뜻은 모르고 다만 추측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P건설사 백회장→최대한 노력하자→기획사업관리 보강’이란 4월 3일자 메모가 어떻게 한 전 총리와 연결이 되는지 해석을 하지 못한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 3월 1일자 ‘주변루머, 주변상황에 대한 철저한 관리, 정치권’이란 메모 중에서 ‘정치권’이란 단어가 왜 쓰여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해석을 하지 못한다. 역시 추측이다.

다이어리에 대한 신문에서 “그렇게 받아 적었을 뿐이다” “정확한 기억이 안 난다“며 계속 멋쩍은 헛웃음을 짓던 그는 이어진 회사 주변 경영상황에 대한 신문에서도 ”그런 소문을 들었다” “그런 느낌이었다”는 막연한 증언만 반복했다.

“한명숙 총리가 도와준다는 얘기 있었나”- “직원들 사이에 그런 기대가 있었다”

“한 총리가 (한 사장의 공사수주를 돕기 위해) 교회 목사를 만났다는데”- “그런 얘기 들었다”

“한 사장이 총리를 믿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는 취지냐”- “회사 전반에 그런 분위기 있었다”

그는 2008년 3월 회사가 부도난 후 채권자들이 몰려와 경리장부와 컴퓨터를 뒤져 본 후 “한 총리에게 돈이 갔다더라” “교회공사 수주에 돈 많이 썼다더라”는 소문도 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백승헌 변호사가 “(그런 소문들을) 누구로부터, 언제쯤, 어떤 경위로 들었는지 특정할 수 있는가” 고 묻자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며 또 한번 멋쩍게 웃었다.

이 증인이 소문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전 총리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한 전 사장이 한 전 총리 저서를 다량 구입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줬다는 사실뿐이었다.

소문만 들은 증인, 기억력 없는 증인

이어 등장한 한 전 사장의 부친 한 아무개 씨는 75세의 고령이었다. 물론 인간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 보다 불과 한 살 적은 최시중 같은 이는, 자신의 재산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을 명료하게 알고 있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숫자의 의미도 사람마다 다른지 이날 증언대에 선 한 씨는 계속 자신의 부족한 기억력과 구강구조를 탓하며 어눌한 어조로 횡설수설하는 답변으로 변호인들뿐 아니라 재판관까지 괴롭혔다.

그는 이날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한 전 총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로 결심한 듯 했다. 종친으로서 한 전 총리와의 오랜 인연을 자랑하며 “만호(아들)가 한 총리에게 돈을 줄 이유도 없고 한 총리가 받을 이유도 없다”고 분명히 말하면서 자신에 대한 검찰조서의 내용들이 “기억도 없을 뿐 아니라 눈이 나빠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서명했다”고 증언했다.

검사가 접견기록 등을 인용, 한만호 전 사장이 모친에게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했으며, 모친이 아들에게 검찰 가서 사실대로 잘 얘기하라고 했을 때 한 전 사장이 “예, 예”하고 답변한 부분에 대해 질문하자 “한만호는 원래 (부모들이) 큰 걱정 안하게 예! 예! 라고 잘 해요”라고 답변한다.

그의 증언이 어느 쪽에 유리할지는 모르지만 재판관은 “말이 굉장히 불투명하다. (증언의 효력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난다고 결론대로 해야 하는지 불명확하다”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불량증인으로도 안 되니 함량미달 증인까지도 동원하는 것인가. 한 전 총리를 엮어 넣으려는 검찰의 안간 힘이 이젠 최소한의 절제와 예의마저도 벗어나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블랙 코미디의 백미... ‘놀라운 3단논법’으로 치고 튀는 검사

주임검사는 공판 때마다 기발한 발언으로 방청객들에게 실소를 선사하는 인물이다. 이날도 예외 없이 그는 한 가지 재주를 부린다. 김 모 증인을 통해 한신건영 주변에 나돌았다는 온갖 소문을 확인한 후다.

“(김 모 증인이 들었다는) 소문들이 정확하네요. 박 모 임원이 1억원을 받았다는 것, 김 모 장로가 2억 2천만원을 받았다는 소문은 바로 이 법정에서 자신들이 인정했지요. 1억원을 받고 대출편의를 봐줬다고 소문이 났던 김 모 지점장 역시 사실로 확인돼 구속된 상태구요.”

그가 말하고 싶어 한 것은 결국 “그러므로 한명숙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소문도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었을 터다. 변호인단이 일제히 제지하자 그는 “아니 제 말을 끝까지 들어 보세요”라고 얼굴을 붉히면서 “그렇게 소문이 잘 맞게 된 것이, 채권자들이 부도 후에 컴퓨터, 경리장부를 보고 밝혀냈기 때문인가요?”라는 터무니없는 질문으로 꼬리를 사린다. 집요함과 뻔뻔함은 기본이고 이 정도의 임기응변 실력은 있어야 이 시대 이 나라에서 정치검사 소리는 듣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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