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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세상칼럼

[14차공판 참관기] “모든 현금은 한만호 사장에게로 통하는 것 아니냐”

2011.05.31


“모든 현금은 한만호 사장에게로 통하는 것 아니냐”
- [14차공판 참관기] 별건 수사 벌이듯 증인신문하는 검찰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기자들은 쓰는 것이 직업이지만 때때로 그들이 하는 행동이 ‘쓰는 것’ 이상으로 상황의 추이를 짐작케 해 주는 경우가 있다. 햇병아리 기자일 때는 아무 사건이나 천방지축으로 뛰어 다니지만,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이야기 되는 것’ 과 ‘안 되는 것’을 직감적으로 구별해 무거운 몸을 움직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을 취재하는 기자들 수가 격감했다. 기자들은 처음에는 30석 남짓한 방청석을 거의 채울 만큼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었다는 핵심인물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이 양심선언을 한 2차 공판 이래 취재기자 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그동안 딱 한번, 검찰이 한 전 사장의 구치소 접견 녹취록을 입수해 놓고 “오늘 법정에서 한 건 터진다”며 ‘호객행위’에 나섰던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이제 취재기자수가 많아야 6~7명을 넘지 못한다. 언론이 흥미를 잃었다는 건 재판이 이미 물 건너갔다는 얘기다.

언론의 마지못한 관심 속에 혼자만 열 내는 검찰

30일 열린 14차 공판이 잠깐 휴정할 때 취재기자 너덧 명이 둘러서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모두가 처음부터 사건을 꿰뚫고 있는 베테랑은 아닌 듯하다.

“이 사건은 건설업자가 한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는 게 본질 아니었어?”

“그렇지. 공소내용은 그렇지”

“그런데 지금이 재판 막바지인데 9억 원 얘기는 왜 여태 안 나오고 고작 보좌관이 1억원을 개인용도로 빌렸네, 아니네 얘기만 계속하는 거지?”

“그나마 그게 유일한 물증이기 때문이야”

언론은 심드렁한데 검사들의 집요함은 뜨거움을 더 해 간다. 오후 공판이 속개되기 전 변호인단은 재판장의 허락을 받아 ‘검사의 증거확보 등에 관한 의견’을 냈다. 공소제기 후에도 계속되는 일방적 수사와 무차별적인 증거신청, 수사자료 미공개뿐 아니라 제시자료를 왜곡까지 함으로써 피고인들의 방어권이 침해되고, 개인정보가 노출은 물론 신속한 재판진행이 저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검사들은 “(검찰에 불리한) 증언들을 탄핵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맞섰으나 재판장은 “앞으로 검찰이 증거자료를 취득하고자 할 때는 법원을 통해서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것이 오후 2시 30분쯤이었다. 그런데 재판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오후 6시 20분쯤 “검찰 수사관이 강동구에 있는 모 한방병원에 와서 한 총리의 진료기록부를 내놓으라고 난리다”라는 긴급전갈이 변호인단에 전달됐다. 재판장이 결정을 내리고, 자신들이 “앞으로 꼭 그러하겠다”고 약속했던 사안마저 검사들은 이렇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사관들은 이날 오전에도 증인의 처조카를 찾아가 진료기록을 얻어 내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물론 검찰은 당사자의 당일 행적에 의심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동선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진료기록이란 가장 보호받아야 할 프라이버시에 해당할 뿐 아니라, 한 전 총리의 경우 특히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정보사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재판에 필요하다고 아무나 입수해서 저장하고 퍼뜨릴 그런 정보가 아닌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재판장의 판단에 맡기자고 결정한 지 불과 수 시간도 안 돼 검찰은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다시 진료기록 수집에 나선 것이다.

검찰에 ‘적대적인 증인’은 이렇게 증언대에 서기 전부터 금융거래내역, 통화내역은 물론 진료기록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발가벗겨진다. 그리고 증언대에 서는 순간 이번에는 갈기갈기 찢긴다. 이날 검찰에 ‘적대적인 증인’으로 찍힌 채 증언대에서 선 이는 한 전 총리의 보좌관 김 아무개씨다. 그 역시 한 전 총리와 함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으므로 이번 재판의 피고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김씨는 증언을 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개인용도 돈을 경선기탁금 명목으로 빌렸다”-김씨의 ‘경솔한 짓’

김씨의 이날 증언을 요약하면, 김씨가 2007년 3월 말 한 전 사장으로부터 3억원을 빌린 것은 남편이 구상하는 관광사업 자금용도였다. 2억 현금과 1억짜리 수표였는데 차용증은 쓰지 않았다. 언제든 한 사장이 다시 필요하면 돌려주기로 했다. 이 돈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한 사장의 사정이 어려워져 2억원은 돌려 줬고 1억짜리 수표는 계속 보관하고 있었는데 2009년 2월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이사하는 과정에 5천만원이 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빌려줬다. 당시 동생이 5천만원어치 수표 두 장을 가져와 1억짜리 수표를 바꿔 갔으며 이후 보름도 안 돼 또 다른 5천만원어치 수표를 가져와 빌려 간 돈을 깨끗이 갚았다.

김씨는 한 사장에게서 돈 빌린 사실을 한 전 총리에게 이야기하지 않다가 2010년 4월 8일 한 사장과 연계된 한 총리에 대한 별건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비로소 자신이 개인용도로 한 사장에게서 돈을 빌린 사실이 있다는 것을 털어 놓았다. 이후 6월 17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실은 개인용도로 빌린 것이 아니라 (한 전 총리 당내 대선후보) 경선기탁금 명목으로 빌렸다고 고백해 당시 자리에 배석했던 한 전 총리에게 크게 혼이 났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7월, 그러니까 보좌관 김씨가 한 사장으로부터 돈을 빌린 지 4개월 후에 은행에서 2억5천만원을 대출받아 경선기탁금을 충당한 바 있으므로 김씨가 한 사장에게서 빌린 돈은 경선기탁금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결국 김씨의 증언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한 사장에게 돈을 빌리기는 했지만, 돈을 빌릴 당시 한 사장에게는 ‘경선기탁금’이란 명목을 댔으며, 이를 숨겨 오다가 지난 해 사건이 터진 뒤에야 한 전 총리에게 고백한 것이 된다. 김씨는 이날 ‘결과적으로 거짓말’ ‘순간적인 잘못 판단’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여러 번 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김 씨는 나름 용기 있는 증언을 한 셈이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용도’로 빌린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던 그가 여러 번 망설임 끝에 ‘경선기탁금’ 명목으로 빌렸다는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그럼에도 실제 기탁금으로는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정치자금법 위반혐의 외에 사기혐의를 받게 될 우려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법정을 수사실로 만들며 허깨비와 싸우는 검찰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김씨가 한 사장에게서 무슨 명목으로 얼마를 빌려 어떻게 쓰거나 보관했든 그건 그 돈이고, 한 전 총리가 받은 9억원은 따로 있으며 동생이 사용한 1억짜리 수표는 그 9억원에 포함된 것으로 한 총리가 직접 건넨 것이 틀림없다는 굳은 믿음이 있는 것이다. 검찰이 (수표가 오갔다는) 2009년 2월 21일 전후의 증인의 동선파악에 그토록 집착하면서 “(그날 한 총리를 모시고 다니면서) 동생에게 1억 빌려줬다고 말할 수 있는 정황 아니었나” “(동생이) 순순히 빌려 가더냐” “1억짜리 수표를 집 책상서랍에 보관했다는데 도둑맞을 걱정은 안 했느냐” “(동생에게서 고마움의 표시로 받은) 인진쑥이 어디 제품이더냐” 등등 봉창 두들기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해대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1억원은 그렇다 치고 그럼 나머지 8억원은 어디로 갔는가. 검찰은 한 전 총리가 2008년 7월, 1년 만에 대출금 중 1억원을 상환할 때 김 씨가 심부름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1억원을 누구에게서 전달받아 은행에 갔는지를 실토하라고 증인을 윽박질렀다. 변호인들이 “이번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항변하자 “가족들 계좌를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1억원을 인출한 사실이 없다”며 그 돈은 한 사장에게서 받은 현금 중 일부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달자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추상적(인 이유)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도 뭐하고 그만 하자”는 재판장의 완곡한 만류에도 검찰은 “경선캠프는 어디에 있었나요” “자금은 누가 관리했는지 아나요”에서부터 “일정관리는 누가 했나요” “지역구 사무실 보증금은 어떻게 됐나요”라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법정에서까지 한 전 총리를 지구 끝까지 쫒아가 해체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날 재판은 검찰이 김씨를 상대로 준비했다는 333개의 질문 중 절반 정도밖에 마치지 못하고 8일 특별기일로 넘어갔다. 김씨는 검찰 스스로도 한 사장 버금가는 마지막 중요한 증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2억원(1억짜리 수표와 대출금 상환자금)의 정체마저도 자신이 뜻하는 대로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온갖 억측만 풀어냈을 뿐이다. 앞으로 검찰이 또 무슨 ‘수사’를 벌여 새로운 증거를 들고 나올지 모르지만 ‘시즌 2’라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한 사장은 7억이 됐든 9억이 됐든 단 한 푼도 한 전 총리에게 간 것이 없고 로비자금 등으로 엉뚱한 데로 흘러 간 것이라고 이미 양심선언을 했다.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됐다는 ‘3억×3=9억’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허깨비 숫자놀음이었다는 걸 검찰이 깨닫기까지는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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