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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세상칼럼

[기고] “문성근 대표,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011.12.20


“문성근 대표,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기고] 최민희 상임운영위원 ‘문성근, 그와의 동행’


“저를 불쏘시개로 쓰시려는 거 알아요.”

그가 말했다. 가슴이 아팠다. 내가 말했다.

“문목사 아들이라, 디게 재수 없어요. 십자가를 지라는데 어떻게 거부합니까.”

그와 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함께 하면서 미안한 순간이 많았다. 지난 겨울 70년 만에 한파가 찾아왔다. 그는 “야권통합-국민의 명령”을 외치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았다. 함께 할 조건이 못되었다. 미안했다.

그는 태생적으로 ‘회의’라면 경기를 했다. 그런 그를 억지로 의자에 매어두고 ‘회의 고문’을 했다. ‘대표’이기 때문에 그는 자리를 지켜주었다. 미안했다. 국민의 명령 활동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시점부터 무리한 일정에 시달리던 그는 ‘머리가 멍하다’고 말했다.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대의는 아무나 외치냐, ‘단체 대표’로 인정받으려면 몸 관리도 잘해야 한다”며 쌩깠다. 무지 미안했다.

문화예술인이기에 그가 갖는 엄청난 예지력, 순발력, 돌파력 그리고 자유분방함… 많은 것이 버거웠다. 그래서 짜증을 많이 냈다. 미안했다. 그는 좀처럼 역정을 내는 일이 없었다. 아니 화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화를 내고 더 많은 행동을 요구했다. 지켜보면서 늘 미안했다.

그에게 당 대표 출마라는 큰 짐을 지워야 하는 것이 못내 망설여졌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 문 배우가 통합정당 당대표에 출마해야 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견을 냈다는 말을 전하는 순간,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 사람만 빼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출마하랍니다.”

반대하는 딱 한 사람이 누구냐고 그는 묻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비도 되고 눈사람도 되면서

지난해 8월 27일 대한문 앞에서 거리 민란을 필두로 국민의 명령 활동이 시작되었다.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비로 흠뻑 젖은 그가 시민들에게 야권통합-국민의 명령을 외쳤다. 많은 사람들은 그날의 문성근을 잊지 못할 거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올해 1월 전북지역 민란 때, 은파저수지 근처에서 민란을 하는데 앞을 가리지 못할 만큼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삽시간에 문성근은 눈사람으로 변했다. 홈피에 눈사람이 된 문성근의 사진이 올라왔다. 당일 국민의 명령 회원수는 급증했고 그는 몇날 며칠을 끙끙 앓았다.

국민의명령 초기, 거리에서 문성근 혼자 소리쳐 야권통합을 외치는데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순간들도 많았다. 쑥스러웠다. 아니 이 정도 단어로는 그때 심경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쪽팔리고 면 빠지는 순간들이었다. 모두 벌쭉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순간에도 문성근은 야권통합-국민의 명령을 더 크게 외치고 있었다.

여자만에서 야권통합운동을 제안하다

지난해 6월 12일 인사동 식당 ‘여자만’에서 몇 사람이 모였다.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 주말이었다. 이창동 감독과 유시춘 선배, 조기숙 교수를 비롯해 몇몇 사람이 모였던 걸로 기억한다. 안희정 지사도 참석했다. 그때 문성근 대표는 몸살감기가 겹쳐 기침을 심하게 했다. 그때 처음으로 정치권재편 구상을 밝히며 시민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1. 2008년 촛불 이후 시민들의 정치적 각성이 시작되었다. 30만 명이 촛불을 들어도 이 정권은 요지부동이었고 시민들은 절망했다. 촛불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적 요구를 정치권이 받아내지 못하면 대의민주주의는 커다란 위기에 빠질 것이고 이미 위기에 빠져 있다.

2. 우리사회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전과 서거 이후로 완전히 나뉜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정당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3. MB정권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내후년 총선 때 민주진영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정권교체도 없고,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그 후과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일 거다.

4. 밑바닥에서부터 시민들과 함께 야권재편운동을 하자.

그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았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심하게 기침하는 문성근이 더 걱정되었다. 우리는 건강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진부한 조언을 했고 가장 먼저 병원부터 가라고 조언했다.



문성근, 그와의 동행

며칠 후 문성근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야권통합운동 제안서였다. 문성근은 우리에게 제안서를 고쳐달라고 말했다. 몇몇은 제안서의 내용을 가지고 문성근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우리’들 중 누구도 제안서에 손대지 못했다. 문성근의 제안서였고 방향이 시대의 흐름과 맞았다.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제안서를 다시 읽어봐도 그렇다. 연합정당형 정당구조, 시민참여형 정당구조, 온오프(on-off) 결합 정당구조, 20,30대 의무공천제를 도입한 공천방식의 혁명 등 2011년 12월 중순 정당혁신을 위해 논의되는 기본 골격 전부가 문성근의 제안서에 들어 있었다.

이후 진알시(진실을 알리는 시민들의 모임) 젊은 활동가들이 발이 되어 수고해주었고, 조기숙 교수가 정책위원장을 맡아 야권통합정당의 상(像)과 정파등록제의 기본 틀을 만드는 데 힘써주었다. 여균동 감독,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손영태 전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 김동민 교수, 최교진 시민주권 공동대표, 이준동 대표,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등이 자문위원단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2010년 8월 27일 문성근은 대한문 앞에서 첫 민란을 시작했고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홈피를 열었다. 2010년 11월 13일 국민의명령은 2만 회원을 달성하면서 우금치에서 첫 야권통합 추동 봉기를 했으며 2010년 연말 5만 회원이 국민의 명령에 가입했다. 올 3월 회원 10만을 돌파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야권통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거다.

국민의 명령이 정책적 대안 없이 ‘통합’만을 외친다는 비판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성근은 좌절감에 휩싸여 있는 국민들 가슴 속에 MB심판과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 넣어주고 길을 제시해주어야 했다. 야권통합하면 이긴다, 온(on)정당을 열어 시민들이 부담 없이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정당구조를 만들어가자, 모여서 가치를 논의하자는 게 국민의 명령 문성근의 생각이었다.

올해 8월, 희망 2013 원탁회의가 만들어졌고 미래 가치와 비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어 9월 6일, 혁신과 통합이 결성된 후 시민통합당을 거쳐 민주통합당이 만들어진 과정을 다시 돌아보면 정말 ‘문성근이 맨땅에 헤딩해 사고쳤다.’



엄숙한 선택의 순간

한편 국민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 일부 세력이 모여 통합진보당을 만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가 민주통합당과 함께 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진보블럭이 이념이 아닌 ‘새로운 정당구조’로 통합한 것은 국민의 명령 입장에서 보면 대통합운동을 이어나갈 숨통을 열어준 거다.

완전대통합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문성근과 국민의 명령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민주당과 시민사회 등과 함께 하는 민주통합에 어디까지 함께 해야 할까. 완전한 야권대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입장부터 불완전하지만 민주통합에 참여하여 일정한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대통합운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었다.

‘안철수와 박원순 현상’이 기존 야권 재편이 갖는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마당에 진보블럭과의 통합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컸다. 통합보다는 혁신에 무게를 두고 민주대통합을 이루어가자는 주장에 점점 힘이 실려 갔다. 그리고 민주대통합이 구체화되어가면서 문성근에게 당 대표 출마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문성근의 출마를 반대했던 유일한 사람의 주장은 이러했다. 첫째 문성근은 할 만큼 했다, 이제 그를 배우로 돌려 보내주어야 한다. 둘째 야당 대표라는 게 수많은 정치적·정무적 판단을 하며 ‘수완’을 부려야 하는 자리다. 문성근은 도통 ‘잔머리’라든가 ‘수완’을 부릴 재간이 없다. 셋째 당 대표에 출마하면 총선 출마 압박이 가해질 테고 그가 겪어야 할 희생이 너무 크다.

그러나 통합과 혁신의 강한 흐름과 야권통합당이 만들어졌을 때 ‘혁신과 통합’도 중량감 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강했다. 통합과 혁신의 최초 제안자, 추동자로서 누구보다 정당혁신에 대한 신념과 의지가 강한 문성근이 통합당 대표에 출마하지 않으면 누가 출마할 수 있느냐는 반론 앞에서 출마불가론은 힘을 쓰지 못했다.

문성근은 늘 결정적 순간에 문목사 아들이다. 만일 진보블럭까지 포함한 대통합이 이루어졌다면 문성근은 당 대표에 출마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았을 거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국민의 명령은 지금도 문재인, 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정세균, 한명숙 전 총리 등과 유시민, 이정희, 심상정, 노회찬 등이 한 정당 안에서 경쟁하고 토론하며 정치하는 모습을 꿈꾼다.

그리고 문성근은 국민의 명령을 처음 시작하며 약속한 ‘무한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당 대표에 출마했다. 지난 12월 16일 만들어진 민주통합당은 당 대표 경선에 시민이 참여할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우리는 문성근이 많은 시민들을 당 대표 경선에 참여하게 만드는 불씨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 불씨가 총선승리와 정권교체로 이어지길 바란다.

배우에서 시민운동가로, 이제 정치인으로 문성근은 자신을 탈바꿈해 가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정치인 문성근이 지어야 할 십자가의 무게를 그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문성근 대표,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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