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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그의 무죄확정이 기쁘지 않은 이유

강기석 홈페이지편집위원장 2012.01.13


정연주, 그의 무죄확정이 기쁘지 않은 이유
- ‘정연주 죽이기’와 무더기 종편 출범…“국민의 분노, 책임 피할 수 없을 것”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정연주 선배의 무죄 확정 소식을 듣자마자 “축하합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그리곤 곧 후회했다. 축하하려면 기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기쁜 마음은 금방 사라지고 대신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정상으로 돌아온 것뿐이다. 그동안 너무 오랜 시간, 결백하고 순수한 언론인 한 사람이 너무 큰 고통을 받았다. 그렇게 무구한 한 인간의 인격을 농락해 온 권력과 수구언론들이 책임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이 시치미를 떼고 돌아앉아 있는 것은 아직 시간이 이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축하 인사’는 이런 불법·무법 세력들에 대한 응징을 이룰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 선배는 곧 “감사합니다”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그 다섯 글자 속에서 나는 형용하기 어려운, 아주 복잡미묘한 정 선배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불법 밀렵꾼들이 설치한 올무에 걸렸다가 사투 끝에 간신히 벗어난 들짐승의 눈망울이 불현듯 떠올랐다. 일말의 안도감, 그 반대의 불안감, 원망, 가슴 서늘한 처연함, 그런 것들이 당시 내 심정이었던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자 여러 사람들이 “이근안이 고문하는 것만 빼고 모든 것이 옛날로 돌아갔다”고 한탄했다. 결국은 같은 말이겠지만 “그래도 이 정권이 고문은 하지 않지 않느냐”고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착각이었다. 칠성판 위에 눕히지만 않았을 뿐 밥그릇을 빼앗고 체포영장과 소환장을 날리는 더욱 교묘한 고문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물리적·신체적 고문 대신 법을 동원한 심리적 고문의 위력을 우리는 줄줄이 목격하게 됐다.



신체적 고문만이 고문이 아니다

‘미네르바’로 알려진 박대성씨는 대인기피증에 걸린 채 지금도 골방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고 한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 수구언론의 조롱으로 그의 뇌리에 깊이 팬 상처는 무죄판결로 극복될 것이 아니다. 총리실에 의해 불법사찰을 받고 이어 검찰 등 각종 권력기관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김종익씨의 심리상태를 진단한 정혜신 박사는 “그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나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을 겪은 이들과 비슷한 정도의 심리적 상처를 받았다”고 진단했다고 한다. 언제든 자살을 감행할 정도의 심각한 스트레스였다는 것이다.

2년 넘게 꿋꿋하게 정치 검찰과 싸워 온 한명숙 전 총리는 2차 사건 무죄판결이 확정된 후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끝내 통곡을 터뜨렸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절벽에서 몸을 던진 노 대통령의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 한 전 총리의 모습을 지켜본 정연주 선배는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저 고통을 모른다”고 했다.

그런 고통을 스스로도 안은 채 정 선배는 그동안 참으로 부지런히 많은 곳을 뛰어다니며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냈다. 피하고 움츠리는 대신 정면 대결의 길을 택했다. 노무현재단 이사로서 노무현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어떠한 행사도 마다치 않고 앞장섰다. 무대에 서서 노래도 했고, 기타도 쳤다. 언론을 주제로 한 그의 강의는 항상 만원을 이뤘고, 각종 토크쇼에서는 유머와 기지가 번뜩이는 입담으로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어느 때는 서명을 받기 위해 길거리에 나서기도 했고, 때로는 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틈틈이 <한겨레>에 칼럼을 쓰며 ‘조중동 조폭언론들’을 두들겨 팼다. 수구언론들과의 결전은 그의 필생의 임무인 듯하다. 또 나는 그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증언’을 통해, 그가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개혁하기 위해 얼마나 신고 간난의 과정을 거쳤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얼마나 치졸하고 잔혹한 수법들을 동원했는지 여실히 알게 됐다.

그들은 ‘정연주의 KBS를 그대로 놓아둬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고 여겨 협박과 위계로 이사회를 갈아 치운 뒤 정 선배를 몰아내고, 그에게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를 들씌웠다. 아예 숨통을 끊어 놓으려 했던 모양인데 과연 지금은 어떠한가. KBS는 물론 MBC까지 장악한 채 ‘조중동’ 신문의 옹위를 받으며 무더기로 ‘조중동 종편까지 띄운 지금. 이씨 정권은 자신의 의도대로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정권 재창출을 자신할 수 있게 됐는가.



언론장악도 도움 안 되는 이씨 정권의 몰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 공격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은 검찰수사의 결론에도 여전히 불씨를 가득 품은 채 잠복하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당장 정권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폭발력을 지닌 사건이 될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동원한 내곡동 투기사건이나 악취가 진동하는 만사형통 국회사무실 의혹사건도 마찬가지다. ‘돈봉투’가 터져 나오면서 같은 당내 라이벌 정치세력에마저 쫓겨 다니며 전전긍긍하는 처량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앞으로 줄줄이 터져 나올 친인척비리는 물론, 4대강 비리 의혹, 부실 자원외교 의혹 등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당장은 장악된 방송과 알아서 부역하는 수구언론들 덕을 보는 것처럼 착각하겠지만,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학자 해럴드 인니스의 오래전 지적처럼 “모든 미디어는 지식(정보)의 독점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결국 새로운 수준의 사회적 요구에 의해 외곽에서부터 무너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보라! 전통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막히자 곧바로 SNS를 통해 흐르기 시작한 저 엄청난 정보량을! 그 정보를 통해 일어나는 분노와 참여의 열기를!

최시중 방통위원장 역시 양아들이라고까지 불리는 최측근의 부정의혹으로 진즉 궁지에 몰려 있다. 그는 국회에서 두 번이나 “(정 사장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제가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정 선배 역시 “이제 책임을 질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점잖게 촉구했지만 나는 그가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만한 양심과 식견을 갖춘 인물이라면 ‘정연주 죽이기’와 무더기 종편 출범으로 대표되는 언론장악 과정에서 드러난 행태들을 결코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 책임을 지지는 않겠지만, 결국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게 될 것 또한 명확하다. 국민의 분노가 그것을 가능케 할 것이다. 국민의 분노는 최시중에 대한 책임추궁을 넘어 수구언론과 정치 검찰을 응징하는 데까지 이를 것이다. 정연주 선배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언론개혁과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또 한 번, 가장 명징하게 일깨웠다.

그는 분노의 도가니에 또 하나의 불씨를 던졌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칼럼입니다.


▶ 정연주 전 KBS사장 대법원 ‘무죄확정판결’, “강제해임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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