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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추도사] “그가 미소 짓도록 하는 게 희망이자, 결단”

2012.05.23

 “그가 미소 짓도록 하는 게 희망이자, 결단”

- 노무현 대통령 탈상 추도사



세계적 민권평화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꿈은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바로 그는 그의 꿈을 생전에 다 이루지 못한 채 암살당했지만, 그의 꿈은 지금도 우리를 감동시키면서 새 역사를 만들어가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꿈을 꾸기에 사람다운 존재가 됩니다. 더욱이 그 꿈을 현실로 바꾸는 힘에서 우리는 비로소 감동의 지도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인간으로부터 꿈을 빼앗아가는 권력이야말로 가장 반인간적인 폭력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만, 그의 다 이루지 못한 꿈은 더욱 절박하게 우리들의 갈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우리 모두 심기일전하여 힘을 모아 그 꿈을 자랑스러운 우리 현실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꿈이 한 사람의 것일 때는 그것이 헛꿈이 되기 쉽지만, 모두의 것이 될 때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꿈은 곧 변혁의 힘으로 작동할 것입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탈상을 맞아 먼저 우리는 그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 꿈을 징검다리로 삼아 더 큰 꿈을 꾸면서 모두 함께 그 꿈 실현에 힘모아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탈상에서 우리는 그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우리 가슴에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 꿈은 “국민 여러분 한분 한분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그의 말속에 잘 녹아 있습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의 보좌에 앉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국민의 자리에 계속 앉으면서 국민을 대통령 자리에 앉히려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주권은 국민에서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정신을 헌법조항이나 교과서의 항목에 갇혀 있게 하지 않고 일상현실에서 살아나게 하려는 그의 뜻입니다. 주권재민이 암기와 인용의 대상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속에서 멋있게 꽃피울 수 있게 하려 했습니다.

둘째로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하여 사람 사는 따뜻한 세상을 세우려 했습니다. 교육경쟁으로, 정치경쟁으로, 무자비한 시장경쟁으로 거칠게 치닫는 살벌한 상황에서 사람이 짐승으로 변질되는 비극적 현실을 그는 가슴 아파하며 이를 극복해내려 했습니다. 그래서 권력의 최고 지위에서 그는 그 막강한 힘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쏟고 싶어 했습니다. 퇴임한 뒤에도 여기 봉하에 내려와 한 농민으로, 한 시민으로, 한 인간으로 소박하게 살면서 짐승 아닌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는 소박한 세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꿈은 지난 4년 반 동안 체계적으로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한반도를 온 민족의 평화동산으로, 번영의 마당으로 만들 꿈을 꾸었습니다. 2007년에 나온 남북정상 선언에는 그 꿈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습니다. 3자 혹은 4자 정상들 간의 종전선언을 추진해 60년간 민족분단이 제도화되고 냉전체제는 강화되어 온 비극의 민족사를 종식시키려 했습니다. 이것은 통미와 통중을 통한 남북한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그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10.4 선언은 평화와 함께 남북의 번영을 위한 실천방향과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바로 그의 민족번영 꿈에서 비롯된 구체안이었습니다. 그러기에 6.15 선언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총론이었다면 10.4 선언은 구체적인 각론이었습니다. 이런 각론 실천을 거쳐 마침내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 같은 꿈은 지난 4년 반 동안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꿈의 소중함을 오늘 우리는 가슴 시리게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또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소통하는 정치를 꿈꿨습니다. 그는 국민과 마음 터놓고, 국민의 수준에서 국민의 소박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들과 소통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항상 역지사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른바 대통령다운 언어의 권력을 때때로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핀잔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권위주의와 그 불통의 정치를 극복하려는 꿈 때문에 때로는 최고지도자의 격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그만큼 철저하게 그는 서민의 가슴으로, 서민의 말로 국민들과 소통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소통정치의 꿈은 지난 4년 반 기간에 불도저 정치로 무참하게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21세기는 20세기와 달리, 모든 소통이 밑으로부터 치솟아 올라오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모든 주요조직이 투명하게 운영되어야만 비로소 존립가능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노무현의 꿈이 조직적으로 짓밟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경결한 각오로 역사후진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또 꿈이 있었습니다.

지금 세계와 함께 우리는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의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1%가 99%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날로 커져가는 시장의 끝없는 탐욕과 그것을 공정하게 관리해내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력과, 약자의 아픔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기존 정치제도와 정치꾼들의 부패와 위선을 보면서 우리는 노무현의 꿈을 새롭게 성찰하고, 그 꿈을 한 수준 더 높게 펼쳐나가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국가, 시장, 의회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이제 우리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아쉬웠던 정책과 미흡했던 집행내용을 차분히 비판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뛰어넘어가야 더 밝고, 더 맑은 내일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의 꿈을 보다 아름답게 실현하기 위해서도 그의 지난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난 4년 반의 역사후퇴를 비판하는척하면서 교묘하게 이것을 이어가려는 정치세력의 음험한 노력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역사는 항상 진전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와 정의, 평화와 번영을 꾸준히 추구하고 알차게 실현해나가는 방향으로 역사를 추동시켜야 합니다. 정보화 시대 줄 안에서(on-line)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의견일치를 보게 되면 줄 밖에서(off-line) 단결하여 과감하게 역사진전을 이룩해내는 새로운 21세기의 민중 곧 줄씨알과 동고동행(同苦同行)하면서 마침내 동행동락(同行同樂)하는 지도세력이 나와야 합니다.

오만하게 군림하면서 불투명하게 조직을 운영해나가는 기존의 직업정치인들과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공정한 정부를 이끌어 나가려는 깨끗하고 정직하며 겸손한 정치일꾼들이 나와야 하고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을 함께 묶어나가야 합니다. 사회 경제적 약자와 꼴찌 곁에서 그들의 길벗으로 항상 함께하며 고통 받는 자연도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보살펴주는 그러한 감동적인 지도력이 이제는 나와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상을 치루는 오늘 우리는 그분의 향기를 새삼 온몸으로 맡게 됩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바보같이 살았던 그분의 향기는 남달리 바로 보는 그의 바보의 통찰력에서 비롯되었고, 약자들을 따뜻하게 바로 보살피려는 그의 바보의 꿈에서 비롯되었음을 새삼 가슴 시리게 확인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감동적인 바보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바보들의 꿈과 헌신으로 아주 가까운 장래에 더욱 적극적이고 공정한 정부를, 더욱 공평한 인간적 시장을, 더욱 깨끗하고 겸손한 정치인들을 이 땅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3년 전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이 같은 새로운 역사진전을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게 될 것입니다. 노 대통령께서 그렇게 미소 짓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오늘 고인의 명복을 비는 우리의 희망이요, 결단이라 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의 바보 같은 소탈한 모습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평안히 미소 지으며 잠드소서.


2012년 5월 23일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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