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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기특별칼럼]⑦ 평화·주권·균형이 실현되는 대한민국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2012.05.24

             

[특별칼럼]

평화·주권·균형이 실현되는 대한민국

 

이종석(NSC사무차장, 전통일부장관)

 

 

정치가로서 노무현은 한반도 평화번영이 실현되는 통일공동체를 꿈꾸었고, 자위적인 국방역량과 온전한 주권을 지닌 자주적인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이러한 이상은 특별히 보수, 진보라는 나눔의 한 편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분단된 국민국가의 지도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보편적인 상식과 합리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이 꿈을 단순히 으로 남기지 않고 그곳에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지도자였다.

노무현은 평화 안보분야에서 그가 꾸어온 꿈을 대통령이 된 뒤 현실정책에 그대로 투사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책임을 진 시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과 자신의 이상 사이에 놓인 간극을 잘 알고 있었다.

때때로 그의 꿈이 묻어나는 연설이나 발언으로 인해 그를 이상주의자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는 항상 이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현가능한 정책을 구상하며 실천한 현실주의자였다.

보수·진보 아닌 상식과 합리적 판단이상주의 아닌 실현가능정책 구상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평화번영의 통일공동체를 꿈꾸었지만 현실적인 목표는 평화정착과 남북협력의 실현으로 삼았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평화였다.

취임 직후인 20036, 분쟁의 화약고가 된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하고 그 자리에서 북과 협상해서 서해상에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체계를 반드시 구축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는 북한 군부를 어렵게 설득하여 NLL에서 남북 군사력의 우발충돌 방지를 위한 합의를 끌어냈다. 노대통령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 해역의 긴장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대립을 넘어 경제적 공동이익을 창출하는 지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2007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설치를 제안하여 합의를 이끌어 냈다.

결국 노대통령은 참여정부 5년간 남북 간에 한차례의 교전도, 한명의 인명피해자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엄혹한 북 핵 상황 속에서도 한국경제의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될 한반도 경제시대의 파일럿 프로젝트인 개성공단을 조성하는 등 남북관계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루어냈다.

남북관계 중심엔 평화5년간 한번의 교전도 한명의 피해자도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느 정상적인 국민이 그러하듯이 자기나라는 자신이 지키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에서 평화와 공동번영을 실현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는 자주적인 대한민국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는 감성적인 당위론자가 아니었다. 과연 이 길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경로는 무엇이며 제반 정세를 감안할 때 참여정부가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고민 속에서 노대통령은 당면 과제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균형외교를 설정하였다.

노무현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9507월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위임했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돌려받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국가주권의 핵심은 군사주권이다. 전쟁이 발발해서 자국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 아닌 한 독립국가가 군사주권을 보유하는 것은 보편적인 당위성이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도 군사주권의 실체인 작전통제권을 다른 나라에 위임하려하지 않는다.

사실 작전통제권 환수를 전제로 한 자주국방 계획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제기한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70년대 후반에 처음 제기됐다. 당시 남북한 경제력 격차는 21이 되지 않았고, 군사력은 우리가 뒤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2000년 이후 남북 경제력격차는 100 1에 가까운 수준이다. 군사비 규모도 남한이 북한보다 최소한 10배 많이 쓴다. 동아시아 정세도 달라졌다. 한국전 때 북은 스탈린의 허락을 받고 남침했다. 한데 지금 그 소련은 없다. 한국전 때 북이 수세에 몰렸을 때 중국이 참전해 구해줬다. 그런데 중국은 한국과 수교했으며, 한중 무역 규모가 북중 무역규모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노대통령은 객관적인 정세, 남북한 역량비교 등을 과학적으로 따져보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무현대통령은 우리 군의 준비기간을 충분히 산정해서 전시작통제권 환수를 신중하게 추진하였다. 그는 2003년 여름 군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해 필요한 전력, 즉 자위적 국방역량을 갖추는데 드는 소요와 준비기간을 물었다. 군은 정보자산과 각종 전력 강화가 필요하며, 소요기간을 산정해볼 때 그 환수는 2012년경이 적정하다고 보고했다.

 

신중하고 치밀하게 추진한 전작권 환수미국 아닌 우리가 먼저 제안

노대통령은 군의 판단을 존중해서 자신의 임기를 초월해서 8년간의 준비기간을 산정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작업에 착수토록 지시했으며,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매년 9% 내외의 국방비를 증액시켰다. 당시 얼굴만 보아도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미국 군부 네오 콘의 상징인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상대로 이 문제를 꺼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진지하게 미국 측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 초기에는 난항도 있었지만 협상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쳐서 최종적으로 2012417일까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마치기로 하였다. 혹자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위해 미국이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한국이 주동적으로 미국에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건강한 한미관계의 발전을 향한 중대한 전기가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반미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한미동맹 약화를 우려하였다. 그만큼 우리의 대미의존이 심화되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노무현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우리 군과 관료사회, 시민사회 일각에 뿌리박혀 있는 과도한 대미 의존 심리에 대해 우려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보다 건강한 주권국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노대통령은 한미관계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 간 의견 차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양국의 이익이 100% 일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항상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미동맹은 목표아닌 수단일 뿐과도한 대미의존 우려

동맹은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들어주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의 사정과 어려움을 이해하되, 양국 간 이익을 합리적으로 절충해 가는 지혜와 관행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동맹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가목표를 달성하고 국가이익을 증진하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노무현대통령은 자주국가로서 한국의 국가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균형외교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균형외교는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을 비롯한 다른 양자관계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에서 국가 간 갈등을 해소하고 이익을 조율하는 데 능동적으로 앞장서자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오랜 기간 동북아에서 패권적 충돌 속에서 희생되어온 우리민족의 역사를 반추하고 중국의 성장과 한중 경제관계의 비약적인 증대, 한미 동맹의 건강한 발전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균형외교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보았다. 참여정부는 이러한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균형적 실용외교라는 전략기조를 내세워 균형외교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노무현대통령의 균형외교에 대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진출이다. 2005년 여름에 NSC 사무처는 대통령께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반기문 장관을 대통령께 천거하였다. 현직 외교장관이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유엔총장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그의 임기를 보장해야하는 만큼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한 모험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이때 노대통령은 보고자에게 왜 반기문장관이냐고 물었다. “균형외교를 실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보고에 대통령은 두말없이 결심하였다.

반기문장관은 외교부 내에서 신망이 두텁고 국제적으로 탁월한 외교관으로 정평이 자자했으며 자신의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 그러나 일부에서는 좀 미국에 치우치지 않느냐는 평가도 있었다. NSC는 반장관 같은 분이 6자회담에서 네오 콘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정부를 적극 설득하고 각종 한미 현안에서 우리 목소리를 좀 더 분명히 내는데 앞장선다면 국익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마침 2006년 가을에 있을 유엔사무총장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유엔사무총장은 미국과 가까우면서도 중국, 러시아 등과도 우호적인 인물이 아니면 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결국 노무현대통령의 결심으로 반장관은 유엔사무총장 후보가 되고 참여정부는 그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반장관은 남은 임기동안 참여정부의 모토인 균형외교를 앞장서 실현했다.

균형외교는 정당하고도 절박한 과제보수언론 반미로 매도해 공격

노무현대통령은 2005년 초 일련의 연설에서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의 균형자역할을 해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대한민국이 국가능력과 변화한 정세에 맞게 이 지역에 절실히 필요한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균형자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러의 강대국 틈에서 상대적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모든 면에서 균형자가 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생존 터전인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강대국 간의 갈등관계를 극복하고 협력과 평화를 구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능력범위 내에서 사안에 따라 때로는 중일, 미중, 미중일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균형점을 찾고자 노력해나가자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를 제시한 것은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선구적 문제제기였다. 지금은 동북아에서 최소한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을 균형적으로 사고하며 평화공영의 협력구조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새누리당조차 균형외교를 하겠다고 나설 정도가 되었다. 이는 노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얼마나 정당했으며, 또 절박한 과제였는지를 반증한다.

그러나 당시 동북아 균형자론은 야당과 대다수 지식인들에 의해 반미와 허장성세로 일방적인 매도를 당했다. 돌이켜보면 이때 균형자론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참여정부의 대처는 대체로 방어적이었다. 그때 참여정부는 우리가 말하는 균형자의 핵심은 역사적으로 역내에서 패권적 갈등의 경험이 있으며 그로 인해 한반도가 심대한 타격을 입은 바 있는 중일 간에 균형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균형자론이 나온 지 6개월 후인 20059월에는 한국정부가 중국정부와 협력해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9.19 공동성명을 도출해냈으면서도 참여정부는 균형자론에 집요하게 반미의 혐의를 씌우는 보수언론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미국과 동북아 다른 국가사이에서 한국이 수행 할 수 있는 균형자 역할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했다.

당시 정부에서 이 문제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통렬한 책임감을 느낀다
. 특히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읽고 한국의 미래 생존번영 전략의 방향을 냉철하게 제시한 대통령의 뜻을 국가전략 담론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서거하신 대통령께 못내 송구스럽다. 그래서일까? 5월을 맞아 노무현의 균형자론을 구현하여 그가 꿈꾼 대한민국의 실현을 한발 짝 앞당기는 날을 위해 매진하겠다는 결심을 더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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