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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회원 인터뷰] “노무현 성님을 찍어라, 내가 그 사람 동상이다”

2012.06.28

“노무현 성님을 찍어라, 내가 그 사람 동상이다”
유쾌한 이야기꾼 ‘무현동상’을 만나다

사람사는 세상 회원기자 ‘승우나라’


그는 유쾌한 이야기꾼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만나 온 그는 그렇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딱히 나의 취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솔직히 처음과 같지는 않지만-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한 때는 꽤 자주 만났지만 이제는 누구나 그렇듯 서로 먹고 사는 일을 핑계로 만나는 빈도가 아주 드문드문하다.

- 요즘 어떻게 지내요?

“4월 11일 이후로 충격 속에서 지냈어요. 정치 기사를 안 봐요. 마음이 착잡해요. 특히 김해에서 김경수가 낙선한 것을 보고 많이 실망했어요. 그동안 지역주의가 완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대통령님을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되잖아요.”

나로서도 그와 생각이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그 또한 민심이다. 그도 동의한다. 이쯤에서 그의 이야기 길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냥 두면 날이 샐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즘은 일찍 날이 샌다.

- 늘 궁금했는데 물어보지 못한 게 있어요. 별명(닉)을 ‘무현동상’이라고 한 특별한 이유라도?

“말 그대로 노무현의 동생이에요. 2002년 대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노무현 ‘성’(형)을 찍어라 내가 그 사람 ‘동상’이다, 그러고 다녔거든요. 그때 미친놈 소리 많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전에는 대통령님을 지지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제 노선과 다른, 보수와 많이 다르지 않은, 굳이 말하자면 선한 보수 정도였지요. 그런데 후보 경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냥 확 끌려버린 거지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 그리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이제 진부해진 말이다. 그런데 그는 순서가 조금 다르다. 알게 되어 사랑하고 그래서 전과 다른 것을 본다. 그리고 말 그대로 혈육과 같은 연을 맺는다. 무현동상. 말은 역시 마력을 지녔다.

자원봉사, ‘나를 위한 일’

- 촛불에 열심이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던데

“그랬어요. 대통령을 만들어 놓고 저는 무심했거든요.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고요. 가령, 대연정 제안 같은 거지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그분의 결정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한나라당은 연정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었거든요.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 대북특검법 등 이런저런 굵직한 일들이 있었지요. 주변 사람들이 대통령님을 욕할 때, 적극적으로 그분을 변호하지 않았던 것이 퇴임 무렵에 미안함으로 다가왔어요.”

미안함. 대개는 지나고 나서 갖게 되는 정서다. 자신이 세운 대통령을 탄핵이라는 심판대에 세웠던 이들이 공유하는 미안함이라는 정서는 입이라는 발성 도구를 욕을 하는 데 즐겨 사용했던 무리들로부터 그를 옹호하는 데 소홀했음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확산되었다.

- 촛불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고 하던데요.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결과적으로 ‘촛불’이 대통령님을 가시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촛불에 겁을 먹은 이 정권이 검찰을 동원해서 대통령님을 옥죄었다는 거지요. 그 당시 사람 사는 세상 게시판에서 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는 글을 자주 올린 이가 있었잖아요. 그때는 알바다 뭐다해서 몰아내기만 했죠.”

촛불은 들불이었다. 한 개의 촛불은 약한 바람에도 쉽게 꺼지지만 심지와 초가 조금만 남아있어도 다시 살아난다. 당신 곁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두 손을 모아 소중하게 불꽃을 지켜내고 있는 한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곁에 있는 이들에게 불을 전하며 마음도 함께 전했다. 그리고 들불은 혼자서는 어쩌지 못한다. 그도 예외는 아니다.

▲ 2008년 8월 31일. 노 대통령의 생신을 맞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떡 케이크를 준비해 소박한 생일잔치를 치렀다.

- 봉사활동 이야기 좀 하지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지요. 봉사도 처음에는 그분께 진 마음의 빚을 더는 심정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요. 봉사가 중독성이 있어요. 하다보면 남을 위해서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게 돼요. 이것도 자아도취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좋아서 하는 거지요. 봉사는 십시일반이고 또 신체적 조건과 관계없이 할 수 있어요. 가끔 꾀가 나기도 하지만요.”

“사람을 소중히 하는 것, 이것이 그분의 뜻이다”


그는 솔직하다. 그리고 말이 많으면 감추기가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솔직하고 말이 많음에랴. 가끔 꾀가 나기도 했지만 그의 봉사는 그동안 중단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면 그에게 부담을 주는 말일까.

- 기회가 된다면 정치, 그거 관심 있어요?

“전 정치하고픈 생각 없어요.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꼈어요. 그 후에 DJ와 노무현을 경험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직접 정치에 발을 담글 마음은 없습니다.”

젊은 날. 그도 사회주의에 마음을 준 이들 중의 하나였다. 머리가 있고 뜨거운 가슴을 지닌 이들 중에 그런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유물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혁명은 지금의 추세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역설적이게도 ‘노무현’이 더욱 절절한 시대이다.

-재단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듯한데요.

“저는 재단에 변함없는 신뢰를 갖고 있어요. 대통령님은 가셨지만 친구는 남았고요. 이것을 저는 대통령님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재단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람(회원)을 소중히 하라는 거지요. 그게 그분의 뜻이니까요.”

게시판이 낯설다. 낯선 것은 시간에 기대면 되지만 자유 게시판은 이전의 모양새로 돌아갔으면 한다. 무엇보다 댓글의 글자 수를 제한하지 않는 게 좋겠다. ‘동상’의 바램이다.

만남이다. 인터뷰를 구실삼아 그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유쾌한 이야기꾼이다. 봄날처럼 어디 복사꽃이나 산 벚이 지고 두견이가 우는 그런 풍경이 있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테지만 친구가 있고 술이 있으니 그만하면 되었다. 손을 흔들며 그가 지하철역 속으로 가라앉았다. 밤이 깊었다.


* 수원에 살고 계신 ‘승우나라’님은 2008년 8월 ‘사람사는 세상’에 첫발을 디딘 이후 시와 수필, 잠언, 사회비평까지 다양한 삶의 이야기로 게시판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는 후원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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