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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명 감동시킨 ‘노무현 판화’의 주인공 정찬민 작가

2012.07.14

5만 명 감동시킨 ‘노무현 판화’의 주인공
- 판화 작가 정찬민 “노 대통령은 내 작품 최고의 모델”

“오랜만이에요. 진작부터 찾아오려고 했는데, 실은 얼마 전 과천에서 서울 면목동으로 작업실을 이전하는 바람에 요즘 통 눈코 뜰 새가 없었어요.”

장대비가 퍼붓던 어느 오후, 눈에 익은 밤색 강풀 우산을 접어든 정찬민 작가가 노무현재단 사무실을 찾았다. 3주기 서울추모문화제 이후 첫 만남이니 벌써 한 달 반이 훌쩍 지났다. 2주기 추모문화제부터 송년 한마당, 3주기 서울추모전시회 등 만 1년을 재단의 주요 행사 때마다 함께 했는데도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른 즈음에’ 시작된 판화 인생

정 작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기능보유자인 철제 오옥진 선생의 제자다. 각자(刻字)는 나무나 돌에 글씨를 새기는 것으로 이 기술을 가진 장인을 ‘각자장(刻字匠)’이라 부른다. 신라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고려의 팔만대장경 등이 모두 각자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옥진 선생은 4대를 이어온 각자장으로 수덕사 대웅전 현판, 북국사 일주문을 비롯해 현충사, 유네스코한국위원회(명동), 양현재(성균관대) 등 이름난 건축물의 현판이나 간판의 글씨를 조각해 서예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창조한 인물이다. 정 작가는 오옥진 선생과 2004년부터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고 있다.

“저는 미대를 나오거나 전문적인 학습을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상고 출신이거든, 대통령님처럼. 8남매 막내인데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학교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했어요. 그런데 인연이란 게 참 묘해. 제대 후 직장을 몇 년 다니다가 우연히 한겨레신문에 난 ‘목판화 시민강좌’ 광고를 본 거예요. 왠지 확 끌리더라고.”

그때가 서울올림픽 즈음이었다. 판화 강좌는 서울 서대문 굴레방다리 근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서울대 미대 출신의 젊은 작가가 강의를 맡았는데 이른바 ‘운동권 작가’였다고 한다.

“유신 때부터 저도 시민운동 같은 걸 많이 해봐서 알죠. 우리들 머릿속에는 늘 민주주의나 진보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으니까. 정치운동은 아니었지만 노조활동도 했었구요. 흔히들 정치다, 이데올로기다 하는데 사람이 그렇잖아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지. 상식적이지 않은 거에는 소리칠 수 있어야지. 그때 판화 공부하면서도 시위가 생기면 선생과 함께 뛰쳐나가 구호 외치고, 그러다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와 작업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난 뒤부터는 혼자 공부하면서 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지. 벌써 24년이나 지났네.”

5만 명 추억 담긴 ‘노무현 판화’

3주기 서울추모전시회에서 노 대통령의 모습과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이란 친필 어록이 새겨진 그의 판화작품은 전시회 체험코너 가운데 단연 최고의 인기였다. 전시 기간 중에 정 작가의 판화를 받아간 사람이 5만 명이 넘는다. 얼마나 많은 땀과 손길이 닿았는지 원본 목판이 닳아 헤져 더 이상은 판화를 찍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많이 찍기도 했지만 시민들이 대통령의 모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배려해 먹에 아교 성분을 첨가한 것도 원인이었다.

“작품에 대한 애정은 작가마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3주기 추모전시회에서 쓴 판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기면서 닳고 헤진 것이기 때문에 애착이 많이 가요. 그래서 폐기하지 않고 소장하려고요. 나의 애정과 5만 명의 추억이 담긴 것이니까.”

예상과 달리 정 작가는 노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통령을 마음에 담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5공 청문회장의 패기 넘치는 초선의원이 관심의 시작이었고, 종로 보궐선거와 이후 부산 행보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통령 재직시절에는 촛불로 지지와 믿음을 대신했다. TV나 언론을 통해서였을 뿐 대통령을 직접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젖어들다 서거라는 큰 충격과 후회가 노 대통령을 그의 가슴에 커다랗게 각인시켜 놓았다.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서거 100재(百齋) 가 되서야 고인과 추모객의 이름으로 이뤄졌다.

“평소에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막상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더 못 가겠더라고요. 마음이 참 복잡했어요. 100재 무렵에 마침 젊은 친구들이 봉하 가는 버스를 운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지. 뜻이 같은 사람들이 함께 간다고 생각하니까 그나마 마음이 좀 놓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만든 대통령님 판화를 들고 갔는데, 늦게나마 대통령님께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해 가을 집에 봉하쌀 몇 상자 도착했더라고요. 봉하 계신 분들이 답례표시로 챙겨 보낸 거지.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자원봉사자에게 목판화 선물 “그냥 줬어요. 마음이 보여서…”

‘노무현 판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노 대통령 생각이 날 때면 조각도를 들고 나무를 깎았다. 추모행사나 관련 단체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면 어디든 달려갔다. 일정이 맞지 않을 때는 판화와 벼루만이라도 보냈다. 작품 원판을 생판 초보인 사람들에게 선뜻 맡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이 내 판화를 좋아해주니 나도 기쁘죠. 대통령님 사진은 이제 새로 찍을 수가 없잖아. 그렇지만 대통령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은 늘 새로운 감동을 줄 수가 있어요. 소품으로 만든 것까지 합하면 30여 점 정도 만든 것 같네요. 대통령님은 눈, 코, 잎 그리고 이마의 주름까지 삶의 굴곡이 얼굴에 다 드러나요. 둥글둥글 하면서도 선이 참 굵어. 찍었다 하면 다 잘 나오거든요. 저에게는 최고의 모델입니다.”



지난 5월 19일 서울추모문화제가 끝난 뒤 장비와 텐트 정리를 마치고 밤늦게 자원봉사자들이 한 데 모여 짧은 뒤풀이를 한 적이 있다. 추모전시에 이어 문화제에서도 판화 자봉을 전담했던 회원 ‘쇠심줄’님이 가방에서 큼지막한 뭔가를 꺼내들었는데 노 대통령의 얼굴에 ‘내마음속 대통령’이란 연각재의 글씨가 새겨진 목판화였다. 그동안 판화 자봉을 지켜본 정 작가의 선물이었다. 당시 이야기를 물었더니 정 작가는 “그냥 줬어요. 그 사람 마음이 보여서”라고 했다.

“추모전시나 문화제 같은 행사를 다니다보면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나요. 쇠심줄님은 제일 연장자면서 늘 묵묵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고마운 생각도 들고 해서 줬어요. 나는 또 만들면 되잖아.”

2주기 추모문화제 때는 재단 행사가 처음이라 쇠심줄님처럼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별로 없어 화장실도 못 가고 혼자 700~800장을 찍어내느라 아주 애를 먹었다고 웃었다.

정찬민의 ‘노무현을 오래오래 사랑하는 법’

“재능기부라고들 하는데 내가 이런 거 한다고 무슨 배지를 달 것도 아니고,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세상 돌아가는 거 아니겠어요. 대통령님 관련해서 여러 사진 자료를 뽑아놓은 것도 있고,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작품을 만들 생각이에요.”

정 작가는 생활 속의 판화,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고 삶의 다양한 표정을 담은 작품을 많이 만든다. 소제와 장르도 다양하다. 휴대폰에도 직접 만든 작은 목판화 장식이 걸려 있었다. 때로는 지역에 세워진 시비(詩碑)를 탁본해 판화를 만들기도 하고, 이웃이나 친구들의 기념일에는 주인공의 얼굴을 새겨 선물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며 작품 선물을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한다.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대통령님 초상 판화들을 모아 봉하마을이나 대통령 기념관, 아니면 거리에서라도 사람들과 공감하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참, 이번에 옮긴 새 작업실은 전보다 공간이 좀 넓거든요. 혹시 ‘사람사는 세상’ 회원들 가운데 판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함께 배워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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