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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무현’을 생각한다(ABR에서 BTR로!)

이백만 노무현 시민학교 교장 2012.07.20

다시 ‘노무현’을 생각한다(ABR에서 BTR로!)

노무현시민학교 교장  이백만




ABR! 국적불명의 생경한 영어단어다(지금은 사라졌지만).

2008년 이명박정부 초기, 한국의 신문 방송 인터넷 등 온오프 미디어에는 ‘ABR’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했다. ‘Anything But Roh’의 앞 알파벳을 따서 만든 신조어, 새로운 유행어였다. 의미는 ‘노무현과 무조건 반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전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리고 그 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국정철학도 진정성도 없었다. ‘대한민국의 시계’가 정지해 버렸다. 아니,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명박정부는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개혁정책을 거의 모두 뒤엎어버렸다. 정치, 경제, 복지, 노동, 외교안보(통상), 남북관계, 국방, 언론, 환경, 인권, 검찰개혁, 정부인사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노무현과의 역행’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노무현 지우기’, ‘노무현 죽이기’였다. 언론이 이를 'ABR'이라 부른 것이다.

국정파탄이라는 ‘대참사’가 예견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그 핵심 참모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ABR행진을 강행했다. 4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가. 시대는 다시 ‘노무현’을 부르고 있다.

BTR! ‘Back to Roh'의 앞 알파벳을 따서 만든 말이다. 의미는 ‘노무현으로 되돌아가기’다. 여기서의 ‘노무현’은 참여정부의 정책이 아니다. ‘노무현의 가치’ ‘노무현의 진정성’을 뜻한다. BTR은 참여정부의 정책을 답습하자는 게 아니라 ‘노무현의 가치’를 되살리자는 의미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5년 동안 추진했던 참여정부의 정책은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고, 아쉬운 것도 있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추진했을 때의 지향점과 취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국민들은 노무현의 진정성을 인정해 주고 있다. 그래서 BTR이다.  

행복도시(세종시) 건설과 ‘비전2030’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천신만고 끝에 국민적 합의를 얻어 결정한 행복도시를 백지화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크나큰 패착이었다.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이 국민의 힘에 의해 저지되었다. 정부 중앙부처의 세종시 입주가 올 하반기에 시작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중장기 복지정책인 ‘비전2030’은 이명박 대통령이 내팽개쳐 버렸지만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들 모두 ‘비전2030’ 수준 이상의 복지공약을 내우고 있다. 새누리당 유력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복지공약은 ‘비전2030’의 복사판이다. 민주당 대권후보들의 복지공약 강도와 폭은 ‘비전2030’을 몇 배 능가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발표한 중장기 복지정책이 비로소 2013년부터 실행되게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전2030’을 내놓았을 때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은 당시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악담을 퍼부었고,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도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부담이 된다면서 크게 못마땅해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청 정책협의회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대해 “이 정도 수준의 비전도 없이 어떻게 정권을 재창출하려 하느냐”고 다그쳤지만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다.

‘Beyond 노무현’이라는 말이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표현은 ‘Beyond 참여정부’다. ‘노무현 극복’이 아니라 ‘참여정부 극복’이 맞다는 말이다. 극복의 대상은 참여정부의 정책이지 노무현의 가치가 아니다.

참여정부 5년 동안의 정책에 대한 성찰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냉정한 평가를 통해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Beyond 참여정부’라는 표현이 맞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운영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정책적 가치와 진정성은 버려서는 안된다. 더욱더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Beyond 노무현’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인스티튜션(Institution) 혁신’이다. 인스티튜션은 국가운영과 관련된 ‘제도의 틀’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각종 법령은 물론이고 주요 사회관행이 포한된다.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좋은 인스티튜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이다. 끊임 없는 혁신의 결과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낡은 정치 청산’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것은 ‘낡은 질서’ 청산을 의미했다. 강력한 인스티튜션 혁신을 예고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호주제 폐지, 종부세(종합부동산세) 신설, 공수처(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 작통권(작전통제권) 환수, 성매매금지, 인치(人治)청산, 과거사 정리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인스티튜션 개혁이 동시다발로 진행되었다. 마무리된 것도 있고, 마무리됐으나 이명박정부에 의해 백지화된 것도 있다. 또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18세기 프랑스에만 앙시앙레짐(ancien regime)이라는 구체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21세기 초입, 한국에도 진즉 청산되었어야 할 앙시앙레짐이 많다. 그 앙시앙레짐이 없어지길 우리 국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계신다면, 지금의 여야 대권주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아마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인스티튜션을 건설하세요.”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 청와대 참모들에게 늘 말했다. “대통령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고.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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