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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회원인터뷰] 후원회원 부스에서 만난 ‘꽃보다 예쁜 그녀’

2012.08.06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금세 비를 쏟을 듯 무거운데 차창을 스치는 녹음은 파도가 밀려왔다 가는 듯 역동적이다.

매월 한 번씩 봉하마을에서 후원회원 모집 자원봉사를 한다는 부산의 ‘진정한서민’(박정애)님을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어떤 만남이 될까 마음이 설렜다. 사진 촬영을 맡아주신 회원기자 ‘맑은샛별’님이 포항에서 대구까지 한 시간여 차를 달려 나를 데리러 와 봉하까지 동행을 해주셨다. 가는 길에 확인 차 진정한서민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는 인터뷰에 응할 만큼 눈에 띄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한 적이 없는데요.”

일면식이 없어 그런지 전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어색한 눈치다. 일단 만나서 실타래를 풀듯 자연스럽게 대화해보자 마음먹고 점심시간에 맞춰 약속을 정했다.

한 달여 만에 찾은 봉하마을은 흙 내음 속에 어린 벼가 들판 가득 제법 녹색을 머금었다. 마을 입구 길가에 언제 그렇게 자랐는지 익모초 몇 포기가 눈에 띈다. 보고만 있어도 숨이 가쁘다. 테마식당 앞마당에 대형버스 몇 대가 주차되어 있는 걸 보니 여전히 멀리서 오는 이들이 많은가보다. 묘역을 향하는 발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추모의집 앞마당을 지키는 ‘진정한서민’ 가족

“대통령님의 정신을 계승하고,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여러분의 동참이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 노무현재단의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높은음자리를 맴도는 목소리가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집 앞을 지나는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후원회원 모집 부스에서 들리는 소리다. 바로 옆에는 학생 둘이 익숙한 솜씨로 사람들의 판화 체험을 돕고 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몰래 조용히 사진 몇 컷 찍은 뒤 인사를 건넸다. 오래 전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첫 인사가 어색하지 않았다.

점심도 해결할 겸 곧바로 테마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야기를 듣자니 아까 옆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학생들은 고교에 재학 중인 그녀의 딸과 중학생 아들이란다. 후원회원 모집 자봉에는 항상 두 자녀가 함께한다. 봉하마을 외에도 여러 곳에서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저러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질문을 시작했다.

- 매번 이렇게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기 쉽지 않은데, 혹시 대통령님과 특별한 인연이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나 봐요?

“아뇨. 부끄럽게도 2009년 5월 그 참담한 일을 당하기 전에는 그냥 우리나라 대통령 중 한 분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5월 23일 아침, 그날이 토요일이라 조금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TV에 자막과 함께 속보가 나왔어요. 무엇인가 강한 것이 머리를 꽝! 하고 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참담하게 세상을 떠난 것 같아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그날부터 대한문 분향소에 매일 나갔지만 마음은 여전히 텅 빈 것 같았죠.”

국민장을 하루 앞둔 5월 28일, 진정한서민님은 퇴근시간이 되기 무섭게 곧장 봉하로 차를 몰았다. 서울에 살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근처를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가는 길을 제대로 알 턱이 없었다. 몇 번이고 물어물어 겨우 봉하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이었다. 조문행렬이 마을 입구까지 그것도 겹줄로 넘쳐 이어져 있었다. 인파에 합류해 몇 시간을 기다렸다.

“대통령님 영정 앞에 겨우 국화 한 송이를 올렸어요. 그리고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다시 서울로 달렸습니다. 울면서요. 소심할 정도로 주변만 알던 내게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몰라요. 그날 나를 이끈 알 수 없는 힘이 무엇이었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 책, 자료 등을 열심히 찾아 읽었어요. 조금씩 알아 갈수록 아! 이제 우리가 다시는 이런 분을 만날 수 없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커지더군요. 그 뒤로 우리아이들과 대통령님을 이야기하고 그 정신을 함께 잇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 후원회원 모집 자원봉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전에도 봉하에 자원봉사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처음엔 그저 대통령님이 좋아서 봉하를 찾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노무현재단에 필요한 일, 의미 있는 일에 힘을 보테고 싶었어요. 작은 힘이지만 후원회원 부스에서 매월 넷째 주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처음엔 수줍어하던 우리 아이들도 이젠 엄마보다 더 열성이에요. 다행이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봉하에 오는 부담이 많이 줄었어요. 이 또한 대통령님과의 운명인 것 같습니다.”

- 전국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는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가요?

“어느 날 대통령님 사저 앞에 60이 조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어요. 험한 말투와 욕설을 섞어가며 ‘내가 여기(사저) 들어가겠다는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거야!’ 하며 한참 소란스럽더라구요. 후원회원 부스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라 처음엔 마음도 불편하고 그분이 밉기까지 했는데 차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 2011년 4월 9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봉하캠프.

역대 어느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저리 평범한 서민이 들여보내 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욕설을 해도 저렇게 무사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 앞에서 한없이 낮은 자세로 국민의 기를 살려 주신 노무현 대통령님의 사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유롭게 행동하고 마음껏 말하고, 마음먹은 대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귀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그 귀한 것을 늦게 깨달은 나와 아직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국민들이 대통령님의 따뜻한 손을 놓치고 말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그 노인이 한없이 애처롭기까지 했습니다. 오래 잊히지 않는 일이기도 하구요.”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나는 콧날이 자꾸 시큰하여 몇 차례나 시선을 피해야만 했다.

- 대통령님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전과는 다른 삶의 변화를 살고 있는 듯해요.

“부끄럽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투표하는 날은 직장에 좀 늦게 출근하거나 쉬는 날 쯤으로 알고 좋아했어요. 내 선택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이 또한 우리 대통령님이 일깨워 주신 큰 깨달음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힘닿는 데까지 가족들과 함께 열심히 자원봉사하고 싶어요. 게다가 올해는 대선이 있잖아요. 내 소중한 한 표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보다 행복하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투표하려고요.”

봉하에서 만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진정한서민님이 웃으며 봉화산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구름 한 자락이 걸려 있다. 오후가 되어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후원회원 모집 부스도 점점 분주해졌다. 인터뷰에 응해준 것이 고맙고, 바쁜 일손도 도울 겸 진정한서민님과 함께 “후원회원 가입”을 외쳤다. 흐린 하늘이 마침내 빗방울을 쏟아냈다. 어느 틈엔가 ‘맑은샛별’님이 강풀 우산을 건넸다. 그 마음이 더 큰 우산이 되어 우리를 보듬어 주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끝내고 봉하를 떠나는데 묘역 옆에 한가득 피어오른 해바라기와 노란 바람개비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게 보였다. 서로 키를 재는 것 같기도 하고, 노란색의 군무를 추는 듯 보이기도 했다.

봉하의 풍경에선 꽃을 빼 놓을 수 없다. 봄의 민들레, 제비꽃, 화려한 개양귀비, 정열적인 해바라기, 애끓는 꽃무릇, 우물가에 도란도란 촌 색시 같은 쑥부쟁이, 눈발이 날리는 추위에도 담 밑에 버티고 핀 국화까지….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본다. 진정한서민님과 자녀들, 연신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장군차밭과 생태연못을 가꾸는 자원봉사자들, 바람개비 손에 들고 세상을 다 가진 듯 밝게 웃는 아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게 그저 무심코 따라 불렀던 노랫말인줄로만 알았는데 사람사는 세상, 거기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 회원기자 ‘님아 님아’님은 중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 딸들과 함께 지역의 각종 행사는 물론 봉하마을 자원봉사까지 챙기는 후원회원입니다. 노무현재단 대구·경북위원회 상임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며 참여정부의 복지 지침 가운데 하나였던 ‘찾아가는 복지’의 실현으로 지역주민들에게도 신망이 두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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