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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조심해라 자빠진다, 자네 다치면 누가 찍노"

2012.08.13

"야야 조심해라 자빠진다, 자네 다치면 누가 찍노"

[인터뷰] UCC강좌 박상우 강사...'6mm'로 본 노무현

2002년 4월 27일 밤, 경기도 덕평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누구도 안된다고 그럴리 없다고 말하던 그 분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 이 자리에 섰으니 어찌 뜨겁지 않겠는가?"(박상우 강사) 후보 수락 연설중 인사말을 마치고 ,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를 불렀다.

부산에서 인터넷방송 웹PD로 활동하던 박상우씨(미디어봄 대표·전 청와대 행정관). 2001년 초 돌연히 사표를 내고 ‘노무현’이란 이름을 따라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국민경선’ 에서 ‘노무현의 눈물’, ‘후보단일화’ 그리고 ‘16대 대통령 당선’ 순간까지, 그의 카메라는 역사의 순간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이후 최초 정치인 인터넷 방송(티비로닷컴)을 열었고, 취임부터 퇴임까지 영상담당으로 노 대통령을 보좌했다.

본명보다 ‘6미리(6mm)'라는 닉네임으로 더 익숙한 그는 지금까지 3,000편이 넘는 노무현 대통령 관련 영상을 제작했다. 지난 봄부터 <노무현시민학교> 시민영상제작 강사로 나선 그는 '내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시민 누구나 동영상을 제작하고 세상과 공유할 수 있는 시대를 꿈꾼다. 이번 <노무현시민학교> 가을학기 실용강좌 'UCC교실'에도 강사로 나선다.



경상도 아버지 전라도 어머니


- 노 대통령과의 첫 인연은.
2000년 가을 지인의 소개로 노사모를 알게 됐다. 아버지는 경상도 출신, 어머니는 전라도 출신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평소 사이 좋은 고부 관계였지만, 혹 갈등이라도 생기면 할머니는 당신도 모르게 전라도 출신인 어머니의 출생을 탓하셨다. "전라도라서 그래." 어렸지만 그런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동서화합을 외치던 노무현 후보와 그의 팬클럽 노사모를 알게 되었다. 주저할 게 없었다. 바로 부산 노사모에 가입했다. 어린시절부터 목격했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었고, 노 후보를 통해 변화시키고 싶었다.

- 그 전엔 어떤 일을 했는지.
부산에서 선배와 함께 인터넷 벤처기업을 운영했다. 한창 벤처 열풍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을 때였다. 기획과 웹PD(인터넷방송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일을 담당하는 PD 역할)를 맡아 인터넷방송을 하고 있었다.

- 완전히 다른 길로 나선 셈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부산영상위원회 중책을 맡고 있던 '명짱'(명계남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의 별칭)을 노사모 행사에서 자주 뵐 수 있었는데 어느 날 '명짱'이 먼저 제안했다. 함께 전국을 돌아보지 않겠냐고. 당시 '명짱'은 전국을 돌며 노 후보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룻밤 고민하고 바로 사표를 냈다. '명짱'과 함께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다.


"
현장기록은 나의 사명이었다"

- 노사모 활동은 어땠나.
1년 간 전국 구석구석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느새 그 분이 있는 곳엔 카메라를 든 내가 있었다. 역사적인 행보를 기록했다. 그리고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이 시작되었다. 국민들 관심이 높아졌고, 노사모 회원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비를 털어 전국의 경선장을 찾아왔다. 모두가 목이 터져라 '국민통합! 노무현짱!'을 외쳤다. 그 현장을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해 애썼다. 그땐 대부분의 언론이 노 후보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 현장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그때 영상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

- 그 이후엔.
국민경선 직후 정식으로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 인터넷팀으로 옮겼다. 그리고 최초의 정치인 인터넷방송 '티비로닷컴'을 열었다. 처음엔 혼자 했다. 민주당 선대본이 구성되고 여러 사람들이 합류했다.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겼다. 행사가 아무리 많아도, 밤을 새더라도 업데이트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문의 때문에 더 분발해야 했다.

- 당시 놓쳐서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200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밤, 민주당 인터넷본부 한 켠에 스티로폼을 깔아 만든 쪽방에 실신하듯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가장 아쉬운 것은 그날 밤 촬영을 내가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습게도 그렇게 무관심하던 언론들이 내 자리를 대신했다. 결혼식도 1년 미루고 치른 대선이었는데...


"야야, 조심해라 자빠진다"


- 카메라 앞에 선 대통령은 어떠셨나.
대통령은 처음엔 영상 촬영을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 영상이나 사진보다 직접 대면하고 부딪히는 것을 좋아했다. 가식적인 것, 인위적인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열악한 언론환경 때문이었을까. 이후 조금씩 달라졌다. 마치 프로듀서처럼 "이거도 찍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 부분 한 번 다시 찍읍시다" 하면서 직접 촬영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 특별히 기억하는 에피소드는.
대통령 후보 시절 행사장에서 윤도현 밴드를 만나고 말씀을 나누며 차량까지 걸어갈 때였다. 뒷걸음 치며 촬영하던 내가 돌에 걸려 넘어지려고 할 때 대통령이 내 손을 잡아주셨다. 덕분에 카메라와 내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야야, 조심해라 자빠진다, 자네 다치면 누가 찍노? 살살해라." 대통령이 내게 건넨 구수한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열하는 노사모'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 2002년 언론에 박상우 강사의 사진이 나왔던데.
아! 3.12 광주경선 사진일 것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리던 노 후보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표 순간, 애써 기쁜 표정을 누르고 무대로 나가던 그분을 봤다. 기쁨을 표현하고 싶으셨지만 다른 후보들을 배려해 웃음을 애써 누르고 무대로 향하던 모습이었다. 오히려 내가 내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 촬영 중 울음이 터져버렸다. 촬영하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조절하고 그 순간을 기록해야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다음날 연합뉴스에 내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 지인이 연락해 주었다. 그 제목은 "오열하는 노사모" 였다(웃음).


- 대통령 영상을 가장 많이 찍었다고 들었다.
대통령 연설이나 말씀을 참 많이 들었다. 대통령 관련 영상만 3,000편 넘게 만들었다. 그 한편 한편을 편집하기 위해 똑같은 연설을 수십 번도 더 들었다. 그분의 스타일이나 기분, 호흡까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젠 그분의 새로운 연설을 들을 수 없다. 아주 큰 슬픔이다.


"나부터 실천하는 삶으로 바꿔"


- 영결식장에서 영상을 담당했다.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영결식 영상이 그분을 영상에 담은 마지막 작업이었다. 제대로 만들고 싶어 서울에서 독립영화 감독과 편집감독을 급히 불러 작업했다. '문짝'(문성근)님이 내레이션을 녹음해 보내주었다. 그렇게 그분을 위한 마지막 영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작업이 순탄하지 않았다. 편집단계부터 영결식에서 상영하는 순간까지 행정안전부 사람들의 끈질긴 감시와 견제를 받았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직접 검수해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영결식장에서 영상으로 뭔가 일을 내지나 않을까 불안했던 모양이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던 옛말처럼.

- 그후 지방으로 내려갔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지난해부터 몸이 많이 아팠다. 병원을 여기저기 다녀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k-classic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임동창 선생을 만났다. 남원 시골마을 한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요양하러 오라고 했다. 모든 일을 접고 남원으로 갔다. 시골생활에 몸도 조금 나아졌고 '미디어 봄'이라는 프로덕션도 열었다. 탄핵 당시 대통령이 말씀하셨던 '출래불사춘'이란 말이 남아 있던 터라 ‘나 스스로 봄을 만들고 봄을 부르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전북 완주에서 '다듬이 할머니 연주단' 기록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 "서로서로사랑하자" 동영상 및 악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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